1970년대에 가장 관능적이며 육감적인 매력을 지닌 스타를 한 명 고르라면, 윤미라 씨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녀의 연기 인생 중에서 가장 전성기에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터집니다.
윤미라 씨는 한 순간에 가장 추악한 이미지로 전락하고 마는데요 그로부터 3년 뒤, 뜻밖의 반전 결론이 나왔습니다.
지금부터 윤미라 씨의 사건과 그녀가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은 안타까운 이유를 전해드립니다.
원조 미녀배우
윤미라 씨는 1951년 12월 18일 생으로, 2남 3녀 중 장녀로 자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예뻐서 미모로 이름을 떨칠 정도였는데요.
초등학교 시절에 리틀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 1등을 했습니다.
또 윤미라 씨는 고등학교 시절에도 남의 눈에 확 띌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갖고 있었기에, 주위 사람들이 영화 배우를 해보라고 권유를 많이 했습니다.
키도 그 당시 여자로서 보기 드물게 컸는데, 168cm나 되어서 몸매까지 하늘이 내린, 한 마디로 군계일학이였습니다.
원래 윤미라 씨는 어머니를 따라 무용가가 되길 꿈꿨다고 해요.
그러나 이런 대단한 미모와 피지컬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등을 떠밀려 배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2300대 1을 뚫고 연기자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윤미라 씨는 1969년 영화 <사랑하고 있어요>에 단역 배우로 처음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73년도의 영화 <처녀 뱃사공>의 출연해 참신하고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면서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했고, 그녀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77년도의 영화 <고가>에 출연해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대중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이 영화로 그녀는 미모와 연기력을 동시에 갖춘 스타급 여배우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윤미라 씨는 78년도 영화 <엄마 없는 하늘 아래>에서 명품 연기를 선보여 백상, 최우수 여자 연기상을 따내면서 여배우로서 승승장구에 나갑니다.
이처럼 윤미라 씨는 70년대에 20대 리즈 시절을 보내며, 69년부터 80년까지 무려 40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왕성한 연기 활동을 벌려 나갔고, 영화 배우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게 됩니다.
이 시기에 윤미라 씨는 남성 팬들에게 매일같이 수백 통의 러브레터를 받았다고 하며, 우편 배달부가 그 많은 편지들을 나르느라 다리가 퉁퉁 보일 정도였다고 합니다.
윤미라 씨는 그 당시 보기 드문 서구적이면서도 세련된 마스크의 소유자였고, 풍만한 몸매에 섹시하고 글래머러스한 매력까지 풍기면서 한국 최고의 섹시 스타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국판 마릴린 멀로’라고 불렸죠. 그런 윤미라 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미녀 여배우로 미국에 소개되었고, 할리우드 영화에 진출할 기회가 왔습니다.
1978년, 미국 할리우드의 테렌스 영이라고 하는 007 영화까지 찍은 유명 감독이, 당시 570억이라는 엄청난 제작비를 투자해서,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오! 인천!>을 찍는 데 한국 여배우를 물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윤미라 씨도 이 오디션에 31번째로 참가했는데, 헤렌스 영 감독 등 할리우드 제작진이 그녀의 탁월한 미모를 보고 단번에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고 합니다.
당시 한국의 기라성 같은 많은 여배우를 제치고 윤미라 씨가 당당하게 스카웃된 것입니다.
개런티가 5천만 원이었는데, 이때가 1970년대 말이니까, 당시 물가를 감안하면 지금 돈으로 무려 10억이 넘는 큰 금액입니다.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오인천 영화의 촬영을 시작하려는 그 순간, 윤미라 씨의 인생 전체를 통째로 뒤흔든 엄청난 스캔들이 터집니다.
양말 공장 사장과의 간통 사건
이 스캔들 때문에 윤미라 씨는 그만 할리우드 영화 촬영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이 영화는 결국 1981년 맥아더 장군 역으로 로렌스 올리비에, 그리고 재클린 비셋 주연으로 방영되었습니다.
70년대 후반, 메스컴을 뜨겁게 달구었던 윤미라 씨의 스캔들은 바로 양말 공장 사장과의 간통 사건입니다.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 등 권위 있는 상을 계속 수상하면서 연기자로 인기 절정에 있던 윤미라 씨는, 때아닌 양말 공장 사장과의 불륜 사건으로 기나긴 소송에 휘말리게 됩니다.
1979년도에 29세였던 윤미라 씨는 30대 중반인 양말 공장 사장 홍 씨와의 간통 혐의로 홍 씨 부인으로부터 고소를 당합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원래 윤미라 씨는 홍 씨로부터 먼저 사기죄로 고소를 당했는데요 홍 씨의 주장에 의하면, 홍 씨는 78년도에 윤미라 씨와 10번에 걸쳐서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고, 자신의 돈 1천만 원을 윤미라 씨에게 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윤미라 씨가 약속된 기일에 돈을 전혀 갚지 않았다는 이유로, 홍 씨는 윤미라 씨를 사기죄로 고소했던 겁니다.
그러자 윤미라 씨는 홍 씨를 상대로 명예훼손죄로 맞고소를 합니다.
이 사건으로 홍 씨와 윤미라 씨의 관계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자, 홍 씨의 부인은 두 사람을 상대로 간통죄로 고소를 한 것입니다.
지금은 간통죄가 폐지되었지만, 70년대만 해도 간통죄는 무거운 범죄로 법적 처벌을 받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이 매우 보수적이었던 70년대에는, 여배우가 불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 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뿐만 아니라, 여배우로서 사실상 사망 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이렇게 윤미라 씨는 70년대 후반에 간통죄와 사기죄의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고, 홍 씨는 명예훼손죄와 간통죄의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윤미라 씨는 재판에서 “홍 씨로부터 1천만 원을 빌린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지만, 홍 씨가 주장한 것처럼 홍 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사실은 전혀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홍 씨는 여러 번에 걸쳐서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하고, 윤미라 씨는 단 한 번도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매우 이채로운 일이 법정에서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윤미라 씨와 홍 씨 간에는 서로 첨예하게 반대되는 주장으로 진실 공방을 벌였기에, 이 재판은 무려 3년을 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재판을 하는 3년 동안 윤미라 씨는 일체의 연기 활동을 중단하게 됩니다.
이후 윤미라의 간통 혐의에 대한 구속 영장은 기각되는데요.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이용우 판사(서울형사지법)는 1979년 3월 22일 판결에서
“이들이 간통했다는 혐의가 뚜렷하지도 않고, 윤양이 홍씨부인에게 써준 사과문에서 간통사실을 시인했던 것은 홍씨 부인이 고소를 취하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설사 간통리라 할지라도 동거한 것도 아니고, 금전 수수가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간통으로 볼수없다”
“피의 사실이 인정된다 할지라도, 돈을 받고 정사를 벌였다. 따라서 홍문웅이 윤미라와 동거생활을 한 것이 아니고, 돈주고 몇번 바람 피운 정도에 그친 것이다”라고 말했는데요.
판결문을 통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확인하게 되는데요.
그리고 3년이 지난 후, 대법원 최종 판결에서 윤미라 씨는 무죄 판결을 받게 됩니다.
이후 윤미라는 홍문웅에 ‘명예훼손죄’로 소송을 제기하고 승소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홍문웅이 징역 10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지만, 나중 항소에서 벌금 50만원이 선고됩니다.
비록 재판에서 윤미라 씨가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녀의 이미지는 크게 훼손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윤미라 씨는 영화 작업은 거의 하지 않았고, 드라마 위주로 작품을 하게 됩니다.
그녀가 결혼하지 않은 이유
윤미라 씨가 결혼하지 않은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윤미라 씨는 집안의 맏딸이었고 아래로 4명의 동생들이 있었는데, 그녀는 집안에서 사실상 가장 역할을 해왔습니다.
윤미라 씨는 책임감이 무척 강해서 어머니를 모시면서 네 명의 동생들을 부양하는 데에 전념해 왔고, 또한 너무도 바쁜 연기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남자를 만나서 연애하는 데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고 합니다.
윤미라 씨가 결혼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유부남 홍 씨와의 불륜 스캔들도 그녀가 남자를 멀리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실제로 윤미라 씨는 양말 공장 사장과의 불륜 스캔들 이후에는 전혀 남자를 만나지 않고 연기 활동에만 전념해 왔습니다.
그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거의 3년 동안 연기 활동도 전혀 하지 못하고 재판에 끌려다니면서 여론의 심한 뭇매를 맞아온 그녀가 남자들에게 얼마나 큰 불신감이 생기고 크게 실망하게 되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몇 가지 이유들로 인해서 눈부신 미모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윤미라 씨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녀로 살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윤미라 씨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존경할 수 있는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자선 사업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것이죠.
그럼에도 “지금껏 독신으로 살아온 자신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고 말하는 윤미라 씨
윤미라 씨가 과거에 괴로웠던 기억은 모두 잊어버리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연기 생활 잘 하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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