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불륜을 지켜만 봐야했던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낸 후 남편에 속아서 결혼 당한 원조 한류 여배우의 가슴 아픈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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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불륜

이혜숙은 1962년에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그녀의 아버지는 직업이 없는 한량이었던 데다가 불륜까지 했는데, 아버지가 흰구두에 흰바지에 밀집 모자를 쓰고 나가면 그것은 누구를 만나러 간다는 신호였습니다. 


이혜숙은 당시를 회상하며 “어머니가 평생 한 번 자신과 함께 집을 나가서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딸이었던 이해숙과 동네 여인숙으로 들어간 어머니는 당시 이해숙에게 “아빠한테 절대 이야기하지 말고 자기가 여기 있을 테니 아빠 동태를 살펴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때 이혜숙은 초등학교 때였는데요. “만일 자신이 컸으면 아빠에게 뭐라고 했을 거다”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고, 자기가 왜 상처를 받아야 하고, 왜 엄마가 집을 나오지?’ 하며 마음이 참으로 아팠다고 합니다.

이후 집에 갔더니 아버지는 막걸리를 계속 마시고 계셨고, “엄마, 어디 갔니?” 하며 찾는데, 이혜숙은 그런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엄마는 “자신이 한 번 나가보면 아버지가 달라지는 게 있겠지” 하고 나갔지만 결국 이틀 만에 돌아오시게 되는데요. 

그러면서 이혜숙은 “당시 엄마가 약을 드시고 쓰러졌는데 부친의 바람 때문이었던 것 같다”며

“충격에 오는 게 아니라 집에 왜 사람이 많지 엄마가 왜 토하지 그런 필름이 찍혀 있다”고 회상했습니다.

후에 이혜숙의 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지게 되는데, 결국 그때도 역시 어머니가 뒤치다꺼리를 다 했다고 하는데요.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니는 이혜숙에게 “나는 잠자리를 39살 이후로 한 적이 없다”고 밝혔는데, 당시 그 말이 이해숙에게는 굉장히 충격이었지만 후에 자신도 살아보니 ‘그렇게 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어머니께 왜 그렇게 사셨냐고 물어보면 “너희들 때문에 살았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결국 그녀의 어머니 세대는 고통받고 상처받으면서도 아이들 때문에 살아온 인생 같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안겼는데요.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낸 이혜숙은 78년 서울여고 1학년 재학 당시 언니의 권유로 미스 해태 선발 대회에 참가해 우수상을 받으며 연예계에 데뷔하게 됩니다. 


이후 그녀는 81년에 mbc 드라마 <장희빈>에서 인현왕후역을 맡으며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또한 탤런트로 뿐만 아니라 cf 모델로도 맹활약을 펼치게 되는데요.

그녀는 톱스타 미녀 배우들만 한다는 화장품 전속 모델을 19살 때부터 5년이나 했는데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바닷가에서 수영복만 입고 촬영을 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제주도 바다에서 항상 2월부터 3월쯤에 봄 시즌 광고를 찍었는데 대학교 1학년 어린 나이였던 혜숙은 수영복만 입고 촬영하는 것이 부끄러웠다고 하는데요. 

연예계까지 은퇴했는데…


그렇게 톱스타로 큰 인기를 누리던 이혜숙은 23살이었던 어느 날, 돌연 결혼을 발표하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결혼 발표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결국 파혼으로 이어지게 되는데요.

한창 전성기였던 시절, 파혼 사건을 겪으면서 그녀는 결국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훨씬 보수적이었던 당시 사회에서 이혜수의 파혼은 이미지에 큰 데미지를 주게 되는데요. 

이후 3년간 좌절과 절망 속에 살던 그녀는 연기에 대한 갈증 때문에 결국 일본으로 진출하게 됩니다.

당시는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시기라 한국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고조되던 시기였는데요. 

이혜숙은 일본에서 후지 tv의 드라마 출연을 비롯, 쇼 프로그램 mc까지 맡게 되며, 성공리에 활동을 하게 됩니다. 

일본에서 큰 성공을 한 가수 조용필, 계은숙을 이어 배우로써는 이혜숙이 처음이었다고 하는데요.

어느 정도 명성을 되찾게 된 그녀는 이후 다시 국내로 컴백했고, 당시 출연했던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로 제15회 캐나다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되는데요.

당시만 해도 해외 영화제 여우주연상은 1987년 강수연의 시바지를 비롯, 한국 배우 중에는 그때까지 겨우 세 명만 받아봤던 대단한 성과였는데요.

또한 그 영화의 연출자인 장길수 감독이 각본상도 차지하며 그 영화는 한국 영화사에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해외 영화제 두 개 부문 수상의 쾌거를 일궈내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영화 배우로 성공하게 된 이혜숙은 결혼과 함께 은퇴를 선언하며 다시 자취를 감추게 되는데요. 

그녀는 1991년에 영화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에 출연하게 되면서, 지금의 남편 한기윤과 좋은 인연으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이혜숙은 남편 한기윤을 원래 대학교 때 친구의 아는 오빠로 만나 친한 사이였는데, 당시만 해도 서로 콧방귀 뀌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30대가 넘어 우연히 영화 작업을 하면서 영화사 대표였던 남편을 다시 만나게 되자, 그때부터 서로를 남녀로 보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둘은 미국 로케이션 중에 연인 사이로 발전하며 결혼까지 결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큰 시련이 닥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시댁의 강한 반대였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연예인하고 결혼한다고 하면 선호하는 집안이 많지 않았고, 절대 안 된다고 심하게 반대를 했는데, 이혜숙역시 반대하는 집안과는 절대 결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좋아했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됩니다. 


이후 한기윤은 몇 개월 동안 무수히 많은 다른 여자들을 만나보는데, 만나보니까 결국 이해숙에게 다시 와야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그녀에게 이별 여행을 가자고 제안을 하게 됩니다. 


당시 이예숙은 너무 좋은데 안 되니까 눈물을 머금고 이별 여행을 간 거고, 자신이 하도 안 만나주니까 그 명목 하에 만나자고 해서 여행을 가게 되는데요. 


그런데 이 여행에서 그만 이해숙은 너무 놀랄 만한 충격적인 일을 당하게 됩니다.

바로 남편이 여행지에서 이해숙에게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자신과 안 만나주면 죽겠다고 선언하며, 술도 못 하는 사람이 갑자기 벌컥벌컥 마시고, 쓰러지고, 약까지 먹으며 이예숙을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인데요. 

극단적 선택까지 하려는 남편의 목숨을 건 구애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 이해숙은 결국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까지 골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결혼 후 행복한 신혼 생활이 펼쳐질 줄 알았던 그녀는 반대로 시댁 어른들과 상당히 고달프고 힘든 삶을 살게 되는데요. 


그녀의 남편은 어렸을 때 바쁜 시어머니를 대신해 11년간 시고모님의 손에서 키워줬던 바람에 두 분 어머니께 모두 똑같은 대우를 하고 있었고, 그렇다 보니 결혼과 동시에 이해숙에게는 자연스럽게 두 분의 시어머니가 생기게 됩니다.

시어머니를 한 분만 모셔도 불편한데, 두 분이나 계셨으니 이혜숙은 그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친누이와 올케 사이인 두 분께도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있었다며, 함께 여행을 다닐 때 누구 팔장을 먼저 껴야 할지도 눈치가 보일 정도로 처음 시집 왔을 때는 시어머니와 시고모님 두 분 사이에서 너무나 힘들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당시 혜숙은 결혼 후 방송을 그만두고 시누이와 미용실을 차려서 운영하기도 했는데, 시어머니는 그런 그녀의 미용실에 매일 하루도 안 빠지고 나와서 놀다가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혜숙의 친구가 혜숙을 보기 위해 미용실에 놀러 오게 되는데요.


당시 친구가 피자를 주문했는데, 어머니가 계셔서 피자를 권유했지만 괜찮다고 하셨는데요.

안 드신다고 해서 그냥 먹었는데, 그날 저녁에 시어머니는 이혜숙을 호출하게 됩니다. 

당시 어머니는 이해숙에게 “네가 어떻게 친구 앞에서 나한테 피자 한 조각을 권하지 않느냐?”고 따지셨다는데요. 


이혜숙은 친구가 권했는데도 안 드신다고 하셔서 드리지 않았던 건데, 그걸 어머니는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너무 서러웠던 이혜숙은 그만 참지 못하고 시어머니께 결국 폭발하게 되는데요. 

그녀는 “정말 너무하시네요 저도 할 말 있어요”라고 처음으로 시어머니한테 말대꾸를 했는데, 그걸 옆에서 듣고 있던 시누이는 마음이 상했고, 시댁은 쑥대밭이 되버리게 됩니다.


게다가 시아버지는 시누이를 혼냈고, 이혜숙은 집 안에서 왕따를 당하는 기분까지 느끼게 되는데요.

고작 피자 한 조각 때문에 그렇게 서럽게 시집살이를 하는 것도 슬픈데 게다가 남편은 이혜숙을 위해서 희생하겠다고 해서 결혼했는데 결혼하고 보니 이 남자는 자기만 쏙 빠지고 오로지 엄마 편이었습니다.

효자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엄청난 마마보이였다고 합니다. 

신혼 시절, 이혜숙은 당시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남편이 신혼집에 찾아오신 시어머니의 귀만 졸졸 쫓아다니면서 시중을 들고 애교를 피웠다고 하는데요.

1박 2일로 부산 여행을 가는 시어머니를 직접 배웅하러 가자고 해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남자 하나만 보고 시집을 갔는데 남편은 신혼 때 자신을 죽도록 외롭게 만들었고, 극단적 선택까지 감행하며 자신에게 구애했던 남편인데, 그때 자신은 정말 속아서 결혼했다는 생각까지 들게 됩니다. 

전격 복귀 후


그렇게 힘겹게 살아가던 이혜숙은 결국 이러다간 자신이 견디지 못하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고, 이 지독한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돌파구로 다시 연기를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방송에 복귀하게 되는데요.

이혜숙이의 방송에 다시 나온 것에는 바로 이러한 안타까운 속사정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활동을 재개하고서도 위기는 있었다고 하는데요.

과거 주인공을 도맡아 하던 그녀에게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배역들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그녀는 3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부터 드라마에서 엄마 역할을 맡기 시작하게 됩니다.

모두가 그런 이혜숙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이혜숙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배우로써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양한 엄마 역할을 맡아 중년 연기자로써 변신해야한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 판단은 맞았고 이혜숙은 계속해서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을 이어 나갔습니다. 

특히 최근 드라마에서는 ‘악녀’ 캐릭터로 출연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젊었던 시절 어려움이 많았지만, 슬기롭게 극복한 이혜숙이 앞으로도 좋은 날만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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