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는 1939년 생으로 출생은 북한에서 했습니다. 당시 집안은 인삼농사를 크게 짓고 있었기 때문에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6.25 때 남한으로 피난을 오면서 힘든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원주의 학창시절은 남녀차별이 지금보다 심했지만 고등학교까지 나왔고, 심지어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엘리트라고 불리기도 했죠. 숙명여대를 졸업한 후에는 교사로 일하다가 1963년 성우로 데뷔를 했으며, 이후 1972년에는 배우로 전향을 했습니다.
절약왕
전원주가 남한으로 왔을 초기에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절약을 하는 방법밖에 없었는데요. 그것이 몸에 배서인지 이후에도 절약하는 습관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연예계에 데뷔해서도 자만을 하지 않았는데요. 연예계는 가시밭길이며, 밑바닥이라고 생각을 했죠. 그래서 어느 순간 많이 벌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것을 깨닫고 절약을 생활화 했습니다.
CF 한편으로 스타 등극
1998년, IMF가 한창이던 때에 국제전화 TV광고에 전원주가 섭외되는데요. 당시 무명 연예인을 오랫동안 지냈던 그녀에게는 정말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CF였습니다. 당시 개런티로 5,000만원을 받았다고 하니,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재테크에 일찍 눈을 뜨다
전원주는 SK 하이닉스 주식을 2만 원대에 산 것으로 유명한데요. 지금은 12만 원대에 주가가 형성 돼 있으니, 500% 넘는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주식을 10년 동안 보유하면서 달성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주식 성공에 대한 이력을 지니고 있었는데요. 1987년에는 550만원으로 주식을 시작했는데, 3,000만원의 수익을 얻은 것으로 유명하며, 또한 1998년에 받은 광고료 5,000만원을 주식에 투자해 1억 8,000만원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30억 자산가의 비결
현재 전원주는 30억을 보유한 자산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녀가 수십억의 자산가가 될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 묻자 첫째로는 절약을 꼽았습니다. 지금도 휴지 한 장, 물 한 방울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고 했으며, 불필요한 소비를 최대한 줄여서 절약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수십억 자산가가 될 수 있었던 두 번째 요인에 대해서는 “소신”을 언급했는데요. 투자를 할 때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하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회사도 찾아가 보고, 공부를 하면서 확신이 생겼을 때 투자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분산투자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면서 자신은 워낙 조심스럽게 접근하기 때문에 은행도 나눠서 저축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자신만의 철학과 공부를 통해서 재테크에 성공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욕심을 내지 않고 차근차근 투자를 해야 성공할 수 있으며, 한 번에 수지맞으려다 다 잃을 수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현재 전원주는 투자 관련 책도 발간을 했으며, 금융 및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를 해서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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