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미가 아니다. 사실 별 관심이 없다. 멤버 이름과 얼굴 매치가 안되는 건 물론 BTS가 모두 몇 명인지조차 헷갈릴 때도 있다. 뉴스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유명한지를 알게 될 때마다 아직도 신기하다. (BTS의 1회 공연 수익을 들었을 때보다 그들을 비틀즈에 비교한 기사를 봤을 때 더 놀랐다.)
여태껏 나에게 BTS는 막연하게 대단한 존재인 동시에 의문 그 자체였다. 사람들이 대체 왜 BTS에게 열광할까. BTS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그 이유에 대해 나름 분석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지만 뭐 하나 뾰족하게 와닿는 건 없었다. ‘그런가보다’ ‘그렇다고 하네’ 정도로 이해만 하고 넘어갔다. 그러다가 최근 정말 의외의 장소, 전북 완주에서 나름의 답을 찾았다.
여행기자들이 BTS를 애정하는 이유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캡처
전라북도 완주는 여태껏 존재감이 전혀 없었다. 전주라는 전국구 여행지에 가려 ‘관광’을 내세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랬던 완주가 카운터펀치를 날린 건 지난해 여름. 완주의 소소한 멋스러움을 먼저 알아본 건 BTS였다. BTS는 2016년부터 ‘summer package’라는 자체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여행지를 골라 그곳에 머물며 음식도 만들어 먹고 게임도 하고 화보 촬영도 하는 BTS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사이판과 두바이 필리핀 등 해외에서 촬영을 하다가 2019년엔 무대를 국내로 옮겼다.
BTS가 다녀갔다고요?
좌측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캡처
눈을 똥그랗게 뜨고 완주군 관광마케팅팀장에게 되물었다. 여행기자들 사이에서 BTS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각별하다. BTS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아름다운 포인트를 찾아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앨범 사진 배경으로 담는다. BTS가 다녀갔다 하면 전 세계 ‘아미(ARMY)’가 몰려드는 명소가 된다. 그렇게 BTS 명소로 떠오른 대표적인 여행지가 경기도 양주 간이역 일영역과 주문진 버스정류장이다. 언젠가부터 BTS 신곡이 나오면 뮤직비디오부터 찾아보는 이유다.
완주 역시 놀라웠다. 일단 장소 선정부터 그랬다. 완주, 솔직한 말로 어디에 붙었는지도 몰랐다. 듣도 보도 못한 동네에 BTS가 떴다? 이번엔 또 어떤 보석을 발굴했을까. 언젠가부터 BTS 촬영지라고 하면 ‘믿고’ 갈 수 있게 됐다.
사소한 것에서 발견한 무심한 위로
BTS는 종남산과 위봉산 자락에 둘러싸인 아원고택에 일주일 동안 머물며 완주 곳곳을 다녔다. 아원고택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들은 전부 생소했다. 아니, 생소하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공간들은 여행자 입장에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곳들이다. 굳이굳이 시간내서 찾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장사 하는 시간보다 문이 닫혀있는 시간이 더 긴 오래된 구멍가게, 이름도 없이 OO상회와 OO식당을 찾아 그 사잇길로 들어가야만 보이는 다리, 드라마 촬영을 위해 인위적으로 심어진 호수 앞 생뚱맞은 소나무와 완주 사람 기억에만 어렴풋이 남은 오래된 산성 등 BTS는 사소하고 시시할 수 있는 장소들을 배경으로 싱그러운 대한민국의 여름을 담아냈다.
“대체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대요?”
포인트를 옮길 때마다 물었던 것 같다. 당연히 완주군의 도움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저희는 다녀간 것도 몰랐어요. 일절 군에 연락도 안 하고 알아서 장소 찾아서 촬영하고 돌아갔더라고요. 마을 분들은 알고 계셨대요. 보안을 위해서 다들 ‘쉬쉬’했다 시네요.”
BTS가 일주일 동안 머물렀던 아원고택 측도 체크인 전까지 투숙객이 누군지 몰랐다고 했다. BTS 측은 촬영을 위해 아원고택을 통으로 일주일 동안 빌렸는데, 천 단위가 넘어가는 일주일 치 숙박요금을 에누리 없이 전부 지불했다고 했다. BTS 정도면 한 번만 와달라고, 공짜로 협찬하겠다는 업체가 줄을 설 텐데, 예약 당시 BTS의 B자도 듣지 못했단다.
전 세계로 투어를 다니는 뮤지션이 일주일을 통으로 시간을 빼 오롯이 완주에 머물렀다는 것만으로도 놀랍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걸 하면 얼마를 벌 텐데’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나부터도 천박하게 기회비용을 따지게 되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BTS는 왜 더 큰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에 되레 돈을 써가며 촌구석에 처박혀 시간을 보냈을까. 생소한 동네에서 개량 한복을 입고 직접 전통주를 담그고, 패러글라이딩을 하면서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는 내내 고맙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청년 7명이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곳을 발굴하고 전 세계로 공짜 홍보까지 해준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돈을 받고 하는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촌스럽게’ 무거운 사명감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영상 속 BTS는 실제 여행을 떠나온 여느 20대 청년들처럼 왁자지껄 자연스럽다. 어디선가 BTS의 성공 요인을 ‘소통’이라고 분석하는 걸 들었다. 여기 토대가 되는 건 바로 ‘진정성’이다.
화보집을 손에 들고 사진 한컷 한컷을 따라 마주한 완주는 어딘가 특별해 보였다.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날마다 주어지는 쳇바퀴 같은 일상도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 인생의 한 컷이 될 수도 있다는 거창한 마음가짐까지 일었다. BTS가 다녀갔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부정하진 못하겠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헷갈리긴 한다만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우리는 가끔 생각지도 못한 사소한 것에서 큰 위로를 받는 사실 말이다.
완주를 완주한 거북이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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