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픽

첫째 잘 낳았잖아 둘째는 쉽지 않냐고 하지마

뉴 선데이서울 2019. 7. 12. 15:32
반응형
728x170

첫째 잘 낳았잖아, 둘째 낳는 건 쉽지 뭐

둘째를 임신했을 때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입니다. 제가 첫째를 비교적 순탄하게 분만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전 첫째를 낳을 때도 쉽지 않았고 둘째 출산을 앞두고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정말 많이 어려웠죠. 출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임신을 하고 가장 많이 한 일은 출산 후기를 찾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죠.

손가락 하나 굵기만 한 질로 수박이 나오고, 그에 앞서 생리통의 백배가 넘는 진통도 겪어야 한다더군요. 도저히 무섭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먼저 겪은 이들을 통해 출산 과정의 면면을 미리 숙지하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두려움을 다스릴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 열심히 출산 후기를 찾아 읽었죠.

의식적으로 ‘성공 후기’를 더 찾아봤던 것 같습니다. ‘무통주사’를 맞고 큰 통증 없이 아이를 낳았다는 사람, 딱 세 번 힘을 줬는데 아이가 ‘쑴풍’ 나왔다는 사람… 매일 밤, 탈 없이 아이를 잘 낳았다는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서 ‘나도 별일 없이 잘 될 거야’라고 스스로 안심시켰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려움은 더 커졌습니다. 열 개의 순산 후기를 보아도 한 개의 난산 후기 때문에 몇 날 며칠 불안함에 끙끙 앓기까지 했습니다.

후기를 찾아보았던 애초의 목적은 완전히 방향을 잃었습니다. 두려움은 또 다른 두려움을 낳았고 전 제가 처하지도 않은 상황을 미리 사서 걱정하는 심신미약 임산부가 됐습니다.

출산은 잘 했느냐고요? 첫째 아이가 끝까지 머리를 위쪽으로 하고 있던 바람에 결국 전 제왕절개 분만을 했습니다. 임신 기간 내내 보았던 자연분만 출산 후기들은 마지막까지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제왕절개 분만이 결정된 날, 제가 처음으로 한 일 역시 ‘제왕절개 출산 후기’를 찾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수술 절차 중 병원에선 얘기해주지 않는 직접 겪었던 산모들의 유용한 팁 정도만 찾아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전날 입원해서 불편하게 있는 것보단 편하게 집에서 쉬고 아침에 입원하는 걸 추천한다, 수술실에는 내 발로 걸어 들어간다, 수술할 때 무서우면 옆에 계신 선생님들께 얘기해도 된다’같은 것들이었죠.

그리고 후기를 읽으며 두려움을 키우는 것보다 나의 두려움을 직접 써보기로 했습니다. 하나씩 써 내려가다 보니 내가 궁극적으로 다시 눈을 뜨지 못하게 될 수도, 어쩌면 신체 일부를 쓰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음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내가 원해서 가진 아이인데 이 아이를 낳으면서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출산을 코앞에 두자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가 걷잡을 수없이 몰려왔습니다.

불의의 분만사고를 왕왕 접했습니다. 가깝게는 주변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고도 많을 겁니다. 우리나라 모성사망자 수는 2015년 38명, 2016년 34명, 2017년 28명(출처 : 2017년 사망원인통계, 통계청)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임신·출산 과정에서 수십 명의 여성이 사망하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내가 이 현실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완전히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삶을 잃고 싶지 않은 원초적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겠죠. ‘내가 깨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혹시 내 다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차마 나의 순산을 기원하고 있는 가족과 지인들 앞에서는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최근 둘째 출산이 임박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누가 봐도 아주 당찬 성격의 친구입니다. 온종일 깔깔대다 대화의 막바지가 돼서야 출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친구는 그제서야 “나 사실 너무 무서워”라고 털어놓더군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애초에 ‘쉬운 출산’ 같은 건 없습니다. 그 가능성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출산은 모든 여성들의 목숨을 담보로 합니다. 그래서 신성한 것일 테죠.

두려워하는 친구에게 “무서운 게 당연하다”며 “큰일이지만 꼭 잘 끝날 것”이라고 얘기해주었습니다. 나의 출산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진심으로 날 걱정하고 응원해준 사람도 많았습니다. 저는 그들의 마음이 나의 순산을 도왔다고 생각합니다.

출산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있었을 땐 작은 말에 깊은 수렁에 빠지기도, 힘이 나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낯설고도 두려운 인생의 새로운 기점을 앞둔 그들에게 괜한 힘 빠지는 농담이나 장난 혹은 겁주기 식 얘기보다는 진심이 담긴 작은 응원을 전하는 게 어떨까 하네요

반응형
그리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