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가수가 노력해도 단 한 곡 흥행시키기 힘든 상황에 엄청난 히트곡 하나가 있는 가수는 큰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는데요.
대표적인 원 히트 원더의 사례로는 <백세인생>의 이애란, <버스 안에서>의 자야, <빠빠빠>를 부른 크레용팝, <발걸음>을 부른 에메랄드 캐슬, <마지막 승부>를 부른 김민교 등이 있습니다.
그중 김민교가 부른 마지막 승부라는 곡은 동명의 드라마 OST로 2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중들에게 잊히지 않는 곡인데요.
30년 가까이 많은 이들의 애창곡이었던 노래를 부른 가수라니 김민교의 수입은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가 이 곡으로 연희동에 건물을 올렸다는 소문도 있었는데요.
최근 김민교가 방송에 나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는 근황을 보여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는 현재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하지만 매우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는데요.
<마지막 승부>이후 28년간 그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오늘은 마지막 승부라는 곡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김민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데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가수 김민교 씨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을텐데요.
김민교는 1989년 ‘옥슨89’라는 밴드의 보컬로 데뷔했는데요.
(참고로 이 록밴드 옥슨의 창시자는 홍서범입니다)
MBC 강변가요제에 나와 ‘청개구리’라는 금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승부
마지막 승부는 당시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던 <슬램덩크>와 함께 대한민국의 농구 붐을 일으켰던 드라마입니다.
이 작품은 흥행에 성공하며 다수 스타까지 양산했는데요.
심은하는 이 작품에서 다슬이 역을 맡아 첫 해부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던 손지창 역시 마지막 승부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는데요.
이즘 활동하던 농구 선수인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서장훈 역시 드라마의 흥행과 더불어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농구 붐을 일으켰던 마지막 승부 때문에 농구 선수들은 웬만한 연예인 못지 않은 유명 스타가 되기도 했는데요.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았지만, 이 드라마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만, 홍콩 방송에 수출되어 방영되는 역사까지 기록했습니다.
그야말로 한류의 시초격인데요.
한국 스포츠 드라마 역사상 최대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승부는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만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뿐 아니라, ost를 부른 가수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MBC 드라마 OST로 쓰인 같은 제목의 주제가를 부른 가수 김민교는 작품의 흥행과 함께 1994년 가요 프로그램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김민교는 mbc 드라마 ost <마지막 승부>로 kbs 골든컵을 수상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히트곡이 단 한 곳뿐인 원 히트 원더 가수지만, 전주만 들어도 가슴 속에 뜨거움이 느껴지는 이 노래로 승승장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창 전성기던 시절, 돌연 종적을 감췄는데요.
갑작스러운 위암 투병
김민교는 40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병원에서 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는 예능에서도 고정 출연 제의를 받고, 마지막 승부 이후 제2의 전성기를 시작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당시에 대해 밝히길
“녹화를 앞두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건강 쪽으로 안 좋은 얘기를 들었어요”
“알고보니 위암이었습니다”
“정말 그 때는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내와 같이 너무나 많이 울었고, 그 때부터 모든 활동을 중단한 채 내 몸에만 집중했습니다”라고 회상했는데요.
그는 위암으로 인해 무려 위의 70%를 절제해야했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회복 속도 역시 빨랐다는데요.
이런 나이에 암에 걸린 이유에 관해서는 바쁜 스케줄 때문에 규칙적으로 식사를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김민교는 암투병과 위절제 수술을 겪으면서도 간간히 mbc 시트콤 <안녕,프렌체스카>와 <가요톱텐> 등의 활동을 소화해냈습니다.
왜 그는 아픈 와중에 자신의 몸을 돌아보는 것보다 일에 매진한 것일까요? 이유는 지독한 생활고 때문이었습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마지막 승부>로 그가 어마어마한 수익을 냈고, 또 건물까지 가진 줄 아는 사람이 많았지만 정작 그에게는 금전적 수입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연희동의 건물을 산 것은 그가 산 것이 아니라 사무실에서 샀던 것이라고 합니다.
28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자되는 노래를 부른 가수가 그 곡으로 단 한 푼도 벌지 못했다니 꽤 충격적이었는데요.
그는 10여 년간 생계형 가수로 살았다는 사실을 고백해 놀라움을 안겼습니다.
방송 활동이 뜸했던 이유도 먹고 살기 위해 계속 공연을 해서라는데요.
그는 “8~9년 거의 10년 가까이 미사리 카페, 나이트 클럽 심지어슈퍼마켓 맥주박스 위에 앉아서 노래도 했다”
“먹고 살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회상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최근 방송된 MBN ‘특종세상’에서는 ‘마지막 승부’로 큰 사랑을 받은 유명한 가수 김민교가 트로트 가수 이병철과 함께 고속도로 휴게소 공연을 하며 지내는 근황을 전했습니다.
그는 현재 트로트 가수로 변신해 트로트 가수 이병철과 함께 ‘원 플러스 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게릴라 공연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지나가다 눈에 띄면 다 공연을 한다”고 밝혔는데요.
김민교와 이병철은 알록달록한 색감의 화려한 정장에 스타킹을 신고, 열정적인 안무를 선보였지만 사람들의 반응을 얻지 못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김민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스타킹 신고, 알록달록한 자켓을 입고 활동하는 나를 보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두렵기도 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위암 투병을 했던 김민교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위 내시경 검진을 받고있다고 하는데요.
위 절제로 남들보다 위가 작은 김민교는 내시경 검사 결과 위 점막층이 파인 상태였습니다.
다행히도 추적검사만 하면 되는 정도로 규칙적인 식사와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김민교가 지금의 건강한 모습이 된 건 늘 곁에서 지지를 보내준 아내와 두 딸 덕분이라고 하는데요.
아내는 아픈 김민교를 대신해 생활전선에 뛰어든 상태라고 합니다.
이런 가족은 그가 생계형 가수로 열심히 뛰게 하는 이유입니다.
김민교는 “자존심은 전혀 생각 안 했다”
“우리 아내를 위해서, 우리 딸을 위해서 정말 열심히 했다”
“누가 ‘금액이 이것밖에 안 되는데 도와줄 수 있니’라고 해도 갔다”
“금액만 주면 묻지도 따지지 않고 다 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루에 4~5군데 공연을 하고, 그것도 매일 하면 성대를 못 쓰게 되더라”
“그러다보니 목소리가 갈라지고 두꺼워졌다”
“때문에 옛날 발성을 다시 찾아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민교는 “정말 열심히 사는 가수, 노래 잘하는 가수, 밝은 느낌의 에너지를 주는 가수, 항상 밝은 가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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