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를 구해주는 영웅, 밤잠 못 들게 하는 소름 끼치는 악역 등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관객들의 뇌리에 각인된 배우가 갑자기 나사 빠진 모습으로 스크린에 등장한다면? 당연히 만인의 이목이 집중되겠죠. 원래 이미지와의 낙차가 크면 클수록 배우의 변신은 두고두고 회자되기 마련인데요. 늘 진지한 역할, 멋지고 아름다운 역할만 맡던 배우들이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작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오늘은 망가진 모습으로 호감을 산 배우와 그 명장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그것만이 내 세상> 이병헌
배우 이병헌의 연기에 딴지를 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사생활로 이러쿵저러쿵 잡음이 많았는데도 여전히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서의 위상이 무너지지 않은 건, 아마도 이렇게 뛰어난 연기력 덕분이겠죠. 최근 영화 <내부자들>에서 3류 조폭 안상구의 역할, <밀정>에서 특별출연이지만 정채산 역할,<남한산성>에서 청과의 화친을 강변하는 최명길 역할을 통해서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죠. 그러나 얼마전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는 그간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주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은 주먹만 믿고 살아온 한물간 전직 복서 ‘조하’와 엄마만 믿고 살아온 서번트증후군 동생’ 진태’, 공통점이 없는 두 형제가 생전 처음 만나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코미디 영화인데요. 극 중에서 이병헌은 ‘조하’역을 통해 삼류인생 연기를 보여주었죠. 특히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이병헌의 브레이크 댄스 장면이 있습니다. 극 중에서 그는 느닷없이 일어나 브레이크 댄스를 추었는데요. 이 장면을 통해 막춤 연기를 선보여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해당 영화를 연출한 최성현 감독이 제작보고회에서 “이병헌의 대사 90%가 애드리브”라고 밝혔는데요. 이어 “이병헌이 ‘과장된 부분이 있다면 편집을 해달라’ 부탁했다”라는 일화를 전했죠. 이처럼 코믹한 역할 또한 자연스레 소화한 이병헌은 제38회 황금촬영상 시상식에서 연기대상을 수상하며 그의 연기 스펙트럼을 또 한차례 넓혀갔습니다.
2. <미쓰 홍당무> 공효진
로코퀸으로 불리는 배우 공효진은 자연스러운 연기도 연기지만, 스타일 아이콘으로 꼽힐 만큼 패션 센스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그가 영화 <미쓰 홍당무>에서는 파격적인 촌스러움을 선보이는데요. 툭하면 얼굴이 발개지는 양미숙이 짝사랑하는 남자의 사람을 얻기 위해 벌이는 몸부림을 그린 코미디 <미쓰 홍당무>에서 공효진은 안면 홍조증, 부스스한 곱슬머리, 촌스러운 패션, 피해 망상증까지 갖은 콤플렉스를 가진 노처녀 양미숙 역을 맡았습니다.
공효진이 직접 뽑은 극중 명장면은 ‘졸업여행 점프 컷’인데요. 영화를 통틀어 최고조로 빨갰던 홍조 분장을 한 채 등장한 장면으로 교사인 양미숙(공효진)은 단체사진에서 눈에 띄기 위해 점프하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공효진은 “누구에게나 환영받지 못하는 이 아이가 어떻게든 단체사진에 끼고 싶어서 너무나 열심히 뛰는 모습이 그렇게 안 돼 보일 수가 없었고 마음이 아팠다”라며 점프씬에 대해 추억했습니다. 영화계에서 본 적 없던 캐릭터를 연기한 공효진은 그 해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음을 보여주었죠.
3. <똥개> 정우성
최근 tvN <삼시세끼-산촌 편>에 정우성 씨가 게스트로 등장하면서 여성 출연자 및 시청자들의 격한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방에 있는 염정아 씨를 놀래주기 위해 살금살금 다가가는 모습이 마치 순정만화나 영화 속 한 장명 같다는 감상이 줄을 이었죠. 이렇게 자신의 주변을 몽땅 로맨틱하게 만들 만큼 뛰어난 외모를 갖춘 정우성 씨도 2003년 개봉한 <똥개>를 통해 과감한 변신을 시도합니다.
영화 <똥개>에서 백수건달 ‘철민’역을 연기한 정우성은 이전까지 쌓아 온 이미지를 무너뜨렸습니다. 그가 연기한 철민은 늘 무릎이 튀어나온 트레이닝복 바지에 목 늘어진 티셔츠 차림이었으며, 딱히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그날 그날을 나른하게 살아가는 소도시 청년이었는데요. 특히 당랑권 고수와의 한판 승부는 명장면으로 루저 ‘동네 형’의 모습을 코믹 오버 액션 연기를 통해 실감 나게 보여주었죠.
4. <굿바이 싱글> 김혜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시종일관 시선을 사로잡는 배우 김혜수는 <굿바이 싱글>을 통해 망가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 <굿바이 싱글>은 독거 싱글로 살아가는 톱스타 ‘주연’이 본격적인 내편 만들기에 돌입하며 벌어지는 임신 스캔들을 그린 영화인데요. <굿바이 싱글>이 개봉하기 바로 전, 드라마 <시그널>에서 걸크러쉬 형사 차수현역을 맡은 그였기에 철딱서니 없는 톱스타 ‘주연’으로의 변신은 더욱 반전으로 느껴졌습니다.
김혜수가 연기한 ‘주연’이 레드 카펫에서 어린 배우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입술 보톡스를 맞은 장면, 짝사랑하던 아나운서 ‘민호’에게 무식을 자랑하는 장면은 김혜수가 완벽히 망가진 모습을 볼 수 있는 장면으로, 신선한 장면으로 손꼽히죠.
5. <플랜맨> 한지민
배우 한지민은 영화 <플랜맨>으로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했습니다. 영화 <플랜맨>은 1분 1초까지 알람에 맞춰 살아온 남자가 계획에 없던 짝사랑 때문에 생애 최초로 무계획적인 삶에 도전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유쾌하게 그린 영화인데요. 한지민은 이 영화에서 털털하고 활발한 밴드 보컬 유소정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의 망가진 연기가 드러나는 장면 중 하나는 그가 연기한 밴드 메인 보컬 유소정이 플랜맨 한정석에게 상상도 못했던 제안을 하는 장면인데요.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유소정은 술에 취한 목소리로 “내가 미친년이라서 싫어요?”라고 한정석에게 돌직구 질문을 던져 그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이 장면을 통해 한지민이 완벽히 유소정 캐릭터를 소화해냈음을 알 수 있죠.
영화 제작발표회에서 한지민은 “<플랜맨>은 유쾌하고 재미있으면서도 각자의 이야기도 있고, 서로를 치유해 가는 내용이라 마음에 들었다”라며 “소정이 캐릭터도 살아 있는 느낌이 들고, 내가 그 전에 해보지 못한 캐릭터라서 굉장히 욕심이 났다”고 말하며 이미지 변신에 대한 흥분을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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