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가정폭력에 대출사기까지 힘들었던 그녀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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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과거는 이를 극복하고 때론 성공의 밑거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2000년대 발라드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에 가려진 한 가수의 힘들었던 과거는 이보다 더 힘들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2000년대를 발라드의 여왕으로 가요계의 한 획을 그은 그녀는 가수 이수영입니다. 이수영은 1999년 11월 1집 ‘I Believe’로 데뷔해 ‘I Believe’를 비롯하여, ‘그리고 사랑해”라라라’, ‘Grace’, ‘덩그러니’, ‘휠릴리’ 등을 연이어 히트시켜, 2003년과 2004년 2년 연속 MBC 연말 가요 시상식의 대상의 영예를 차지하였습니다. 당시 발라드가 댄스 못지않게 대중적인 사랑을 받긴 했지만 여자솔로가수가 섹시 이미지를 내세우지 않고 오랜 기간 인기를 끄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는데, 이수영은 여자 발라드 보컬로서 가성 창법을 이용한 독보적인 음색으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가수로서 화려할 것만 같았던 이수영의 삶은 최근 CBS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해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데뷔 후의 우여곡절을 털어놓으면서 반전을 맞이하게 됩니다.이수영의 어린 시절은 원래 여유롭지 못한 집안 형편이었는데, 이수영이 10살 때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서 더 어려워졌습니다. 아버지 보험금으로 집을 장만하고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는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수영 어머니는 스물일곱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자마자 삼 남매를 건사하기 위해 모질고 추웠던 바깥세상에 내던져졌습니다. 그러나 라면 한 봉지로 온 가족이 끼니를 때워야만 했던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어느 날 어머니는 한밤중에 아이들을 데리고 아버지 산소로 가 극단적인 시도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힘들었던 시간을 보내던 중 이수영 어머니는 이수영이 고1 때 재혼을 하게 되었는데요. 어머니의 재혼이 이수영에게는 더 악몽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계부의 가정폭력으로 아버지를 잃고 가난으로 힘들었던 이수영을 더 궁지로 내몬 것. 실제로 이수영은 어느 날 계부가 영어를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잘 따라오지 못한 남동생을 발로 밟는 장면을 목격하였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저도 그때 고1 정도밖에 안됐기 때문에 힘이 없었다”라며, “너무 저항하면 엄마가 힘들지, 얘를 보호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싶었다. 할 수 있는 게 소리 지르고 울면서 소변을 보고는 쓰러졌다. 이로 인해 (계부의 폭력을) 멈출 수 있었다. 말할 수 없는 사건들이 매일 일어나 너무 힘들던 시기였다”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리고 이수영이 데뷔하기 1년 전 이수영이 유일하게 믿고 따르던 어머니마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과거 한 방송에서 이수영은 “가수가 되려고 했던 것도 혼자 힘들게 산 엄마 호강시켜 주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 엄마 사고 났을 때 나는 `죽지 않을 거야` `나는 이겨낼 거야` 그렇게 다짐했어… 내가 이렇게 당당하게 살 수 있고 큰 사랑을 받는 건 엄마가 하늘에서 기도해 줘서 그런 거라고. 근데 엄마, 이제는 내가 여기서 엄마 위해 기도할 테니까 그만 편하게 쉬어”라고 말해 출연진과 시청자의 눈물을 훔쳤습니다.

게다가 이수영이 데뷔하기 전 소속사는 전기료도 내지 못할 만큼 어려웠습니다. 소속사조차 이수영 하나만 바라만 보는 상황에서 이수영의 어깨는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그런 소속사는 이수영을 강력하게 단련시켰고 이수영은 잠을 4시간만 자면서 노래와 안무 연습을 이어갔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가수가 된 이수영은 다행해 데뷔 직후부터 주목받았고, 얼마지나지 않아 어려웠던 과거의 보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온 나라가 이효리 신드롬으로 들썩이던 2003년, 당시 이효리는 ’10Minutes’으로 mㆍnet뮤직비디오페스티벌을 비롯해 KMTV뮤직어워드, 서울가요대상, SBS가요대전, KBS가요대상 등 각종 연말 시상식을 휩쓸었는데요. 마지막 MBC 10대 가요제 최고 인기 가수상도 이효리가 탈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수상의 주인공은 이수영이 되었습니다.

 

 

최고 인기 가수상 수상 소감에서 역대 최단 시간 수상 소감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겨우 내뱉었던 이수영은 앵콜송 시간에 노래를 못 할 정도로 오열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이수영은 가슴에 저 깊은 곳에서 힘겹게 ‘하늘에 계신 엄마, 아빠…’ 라고 말을 꺼냈는데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한 그 한마디는 이수영의 힘겨웠던 과거와 그리운 부모님을 떠올리게 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붉히게 했습니다.

한 방송의 인터뷰에서 이수영은 “무척 감격스러우면서 그 짧은 순간 지금까지 걸어온 가수의 길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대상을 받은 감격만으로도 눈물이 나올 판인데 힘들었던 지난 시절까지 떠오르니까 정말이지 다리가 풀리고 숨이 막혔다. 옆에서 효리가 계속 부축해 주지 않았다면 서 있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때는 감동과 행복, 그리고 가수가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참아왔던 지난 세월에 대한 기억이 뒤엉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라며 당시 상황을 통곡할 수밖에 없었던 감정을 털어놨습니다.

이렇게 1999년 11월 1집 로 데뷔해서, 2003년에 ’10minutes’의 이효리를 꺾으며 MBC 10대 가수 가요제의 최고 인기 가수상을 수상하고, 다음 해에 MBC 10대 가수 가요제 2연속 수상과 더불어 2004년(휠릴리) 골든디스크 대상까지 거머쥐면서 탄탄대로를 걸을 것만 같았던 그녀의 앞날은 다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소속사를 옮기고 새 출발을 앞둔 7집 ‘Grace’ 발표 날 소속사 대표는 해외에 골프 치러 가는 등 나타나지 않는 날이 많았고 소속사는 이수영과 상의 없이 행사 일정을 잡고 몰래 선급금을 받았습니다. 소속사의 횡포로 이수영은 소속사에서 나오기로 결심하고 소속사를 상대로 1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했는데요. 당시 이수영이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소속사는 전국투어는 하지 않겠다는 초반 계약을 어기고 몰래 전국투어 공연 계약을 맺고 계약금 2억 원을 수령하거나 제대로 된 음반 수익분배를 하지 않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후 합의를 통해 원만히 해결되는 듯하였으나 2008년 다시 11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진행되면서 갈등은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소송으로 인해 연예계에서 좋지 않은 소문으로 다른 소속사로 옮기기 어려워진 이수영은 부모님처럼 따르던 고모가 설립한 소속사에 몸을 담게 됩니다. 그 뒤 8집을 앨범을 발매했으나 예상보다 판매량이 저조했고 이수영 개인적으로 혼자서 마트에도 못 갈 정도로 우울증과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방송에서는 똑똑한 이미지로 비쳤던 이수영은 사실 어렸을 때부터 가수 활동을 하면서 회사가 시키는 대로 살았고, 이수영의 재산은 고모가 관리하였습니다. 스스로가 ‘바보’라고 할 만큼 세상 살아가는 법을 몰랐던 이수영의 인감도장까지 맡아서 관리했던 고모가 이수영의 이름으로 거액의 대출을 받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돈을 벌기만 했고 쓸 줄 몰라서 사치라고는 모르고 살았던 이수영에게 남겨진 것은 수십억의 빚뿐이었습니다.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해 우울증을 앓았던 이수영은 수차례 자해를 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고층 아파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름다운 꽃밭과 요정들이 날고 있어 나도 자유롭게 날아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잘못된 선택을 하려고도 했었다”라고 털어놨습니다. 그를 발견한 남동생이 겨우 최악의 상황은 막았고, 이후 우울증에 걸린 자신을 인정하고 치료를 하면서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이렇게 힘들었던 시기에 부모가 없는 이수영에게 가족 못지 않게 곁을 지켜준 이는 친구 박경림입니다. 이수영은 MBC every1에 출연해서도 힘들었던 시기를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요. 방송에서 그녀는 “너무 힘들었을 때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면 죽을까? 싶더라. 서행하던 차에서 뛰어 굴렀다. 구른 뒤에도 가장 먼저 박경림에게 전화를 걸었다”라고 대출 사기 후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이어 그는 “집에 압류 표까지 붙었다. 만삭이었던 박경림이 직접 은행에 가더니 지점장 실로 직행하더라. 나중에 제가 아기를 가져보니까 정말 힘들 때인데 최선을 다해 도와줬다. 평생 고맙게 생각한다”라며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그리고 오랜 소송과 재정 문제로 힘든 시기에 이수영은 또 하나의 특별한 선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선물은 바로 지금의 남편인데요. 10살 연상의 회사원인 남편과 이수영은 교회에서 처음 만난 이후 연인으로 발전했고 이수영은 남편과 단 3번째 만남에서 결혼을 결심할 정도로 남편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수영은 소송과 사기 등에 얽혀 거액의 빚이 남아 있었고, 자신의 그런 상황이 남편에게까지 피해가 갈까 봐 두려웠습니다. 이수영이 남편에게 빚고백 후 연락이 되지 않던 남편은 5일 뒤에 돌아와 “같이 이겨내자”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후 두 사람은 결혼 후 대출금을 다 갚고, 재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수영이 끝이 보이지 않던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동생들 그리고 친구 박경림과 남편의 이수영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요? 이수영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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