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행사비가 '차한대 값'였다던 국민MC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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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급 연예인의 출연료는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국민 MC 유재석의 1회 출연료는 어지간한 준중형차 한대 가격인데요. 수천만 원 수익을 내는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사랑꾼으로도 유명하죠. 맛있는게 있다면 아내에게 주려 포장해 간다는 유재석의 이야기는 그가 얼마나 사랑꾼인지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그렇다면 과거 유재석만큼 잘 나갔던 MC들은 어땠을까요? 유재석이 조금씩 커리어를 쌓아 지금의 자리에 올라왔듯, 과거에도 수많은 국민 MC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각각의 이유로 후배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었는데요. 자취를 감춘 과거 국민 MC들의 현황과 사랑 이야기를 조금 더 알아봅니다. 

 

고3부터 키운 사랑, 이홍렬

이홍렬은 DJ 출신입니다. 그러다 허참의 권유로 방송가에 입문해 MBC 대표 MC가 되었죠. 일요일밤의 대행진, 청춘행진곡, 오늘은 좋은 날, 일밤을 통해 꾸준히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췄습니다. 다만 90년대 초 한창 잘나가던 시절 대뜸 일본 유학을 떠나는데요. 2년 만에 방송 복귀해 귀곡산장으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이홍렬쇼'라는 토크쇼까지 진행했죠. 

각종 CF까지 달성한 그는 34세에 26세 아내를 맞이합니다. 이들이 과거 잠시 사귀었다 다시 만나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데요. 첫 연애 당시 아내가 고3에 불과해 화제가 되었죠. 이외에 이홍렬은 2002년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이후 방송가에서 자취를 감추었는데요. 2014년부터 다시 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해 현재는 '이홍렬TV'라는 1인 미디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믿었던 남편의 배신, 이다도시

한국에 프랑스 감탄사 "울랄라"를 유행시킨 이다도시는 한국 외국인 MC의 시발점입니다. 그는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들기 한참 전인 1992년,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학생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했죠. 이후 한국에 매력에 빠진 그는 1993년 한국인과 1년의 연애 끝에 결혼하며 한국으로 귀화했습니다. 이후 EBS 프랑스어 회화 보조강사로 출연하면서 방송가에 발을 들이게 되었죠. 

이다도시는 '한국어 잘하는 프랑스 여자'라는 전에 없던 컨셉으로 인지도를 높이는데요. 2008년에는 " 우리 남편이 달라졌어요"의 단독 MC를 맡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다도시는 방송가에서 자취를 감추었는데요. 그 이유는 바로 이혼이었습니다. 심지어 합의 이혼이 아닌 소송이라 부부 재산까지 묶여 아이 생활비도 마련하기 어려웠죠. 때문에 이다도시는 방송일이 아닌 다른 일을 통해 수익을 내고자 했습니다. 

결국 2010년 이다도시는 이혼에 성공하는데요. 최근 한 방송에서 남편이 지불하기로 약속한 양육비를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납부하지 않아 재정상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심지어 12살 아들에게 돈을 빌려야 했다고 전했죠. 2013년부터 불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생활은 좀 나아졌지만 방송 출연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몇몇 종편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얼굴을 비추고 있죠. 현재는 해외 주재원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한 프랑스 남성과 재혼해 신혼생활을 만끽하는 중입니다. 

한글사랑 가득, 정재환

정재환은 1980~2000년대 초반 국민 MC로 인정받은 인물입니다. 개그맨 출신인 그는 잘생긴 외모로 주목받았습니다. 신사적인 이미지 덕분에 KBS 2TV 퀴즈 버라이어티 퍼즐특급열차 메인 MC를 맡으면서 전성기를 달립니다. 결혼도 해 아들도 1명 두었는데요. 방송이 종영하고 정재환, 최양락, 신동엽 등 신진 MC에 서서히 밀리면서 자연스럽게 방송가에서 자취를 감추었죠. 

이후 그는 불혹의 나이에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한 소식을 전합니다. 심지어 3년 만에 수석으로 졸업했죠. 이후 2013년에는 박사학위까지 받았습니다. 교수 제의를 받았지만 한글 연구를 위해 필리핀 연수를 떠났죠. 한국에 돌아온 이후 '한글문화연대'를 창설해 대표로 활동하고 있죠. 현재는 국어국문학, 역사학 교수로 강의하는 한편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글 관련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5년이 무색했던 이창명

 

이창명도 개그맨 출신 MC입니다. 그는 1992년 KBS 대학개그제로 데뷔했는데요. 사실 개그맨으로 큰 활약은 없었습니다. 다만 'TV는 사랑의 싣고' 리포터로 활약하며 조금씩 인지도를 높여갔죠. 그러다 당대 최고의 스타, 김국진과 촬영한 CF가 대박이 나며 그는 '출발 드림팀'의 MC를 꿰차게 됩니다. 하지만 개인의 성공과 달리 결혼생활은 악화일로를 걸었죠. 결국 그는 결혼 15년 만에 불화와 성격차이를 이유로 이혼하게 됩니다. 

 

결혼생활과 달리 그는 국민 MC로 자리 잡습니다. 출발 드림팀이 10년 이상 진행된 장수 프로그램인 만큼 그는 약 11년간 MC를 맡았는데요 2016년, 음주음전 후 도주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습니다. 여기에 과거 장애인 비하 발언 등이 더해져 드림팀마저 종영을 맞이하게 되죠. 이후 이창명은 2019년 종편과 공중파 양쪽에서 재기를 시도했지만 싸늘한 반응을 면치 못했습니다. 

넓은 집에 나홀로, 주병진

주병진 역시 개그맨 출신 MC입니다. 1977년 TBC 전속 코미디언으로 데뷔했죠. 심형래로 대표되는 슬랩스틱 코미디와 다른 스탠드업 코미디를 도입해 '개그계의 신사'라 불렸습니다. 덕분인지 순발력과 유머감각을 인정받아 당시 전성기를 달리던 MBC 서세원의 대항마로 선정되었죠. 주병진은 그에 응답하듯 KBS의 '젊음의 행진' MC를 맡아 시청률 역전에 성공하며 국민 MC로 거듭납니다. 

전성기를 달리던 그는 90년대 초 은퇴 선언을 합니다.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주병진은 속옷 브랜드 '보디가드'를 론칭해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약 20년 뒤에 강호동의 '무릎팍도사' 게스트로 얼굴을 비췄죠. 그러나 대마초 밀반입, 필리핀 원정 도박, 꽃뱀 강간 사건 등에 연루되며 이미지가 바닥을 지게 됩니다. 이처럼 이미지가 크게 하락하며 방송활동이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200평대 펜트하우스에 거주 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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