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보지 못했을 법한 각종 미스테리 모음집

반응형
반응형

저주를 싣고 달리는 유령열차

 

니콜라이 고골리(1809 ~ 1852)

러시아의 리얼리즘 소설가

 

 

1998년 9월 25일 러시아 정부 공식기관지인 '로시스카야 가제타(Rossiyskaya Gazeta)'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1911년부터 러시아와 동유럽 등지에서 목격된

예즈드-프리즈락(Poyezd-Prizrak)이라 불리는 유령열차에 관한 기사였다.

 

 

포예즈드-프리즈락은 다른 지역의 유령열차와는 조금 달랐다.

대부분의 유령열차들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고 그냥 통과하는 반면에

포예즈드-프리즈락은 실제로 많은 사람을 치여서 다치거나 죽게 했고

때때로 실종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기사에서 '로시스카야 가제타'는 문제의 유령열차가

러시아의 디킨스로 불리는 니콜라이 고골리(Nikolai Gogol)의 저주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골리는 '외투', '죽은 혼' 등의 작품으로 친숙한 러시아의 대문호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가 왜 유령열차와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고골리는 1809년 우크라이나 소로친치(Sorochintsi)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있었던 그는 소설과 시나리오를 쓰면서 19세기 러시아 최고의 문학가 중 하나가 된다.

 

일상에선 보기 힘든 비상식적인 등장인물들,

그들이 벌이는 희한한 사건과 그로테스크한 결말 등

독특한 작품세계로 사랑을 받았던 고골리지만

그의 죽음은 아직까지도 베일에 싸여 있다.

 

 

오랫동안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던 고골리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치료도 거부하다가 죽었다고 세간에는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1931년 그의 시신이 묻혀 있던 모스크바 세인트 다니엘 사원의 공동묘지가 철거되면서

고골리의 죽음은 미스터리에 휩싸이게 된다.

 

이장하기 위해 관을 열어본 군인들이 그의 관 오른쪽 벽에서

손가락으로 할퀸 자국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증거의 정황상 고골리는 산 채로 생매장 된 것이 분명했다.

 

이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관 속의 시신에 머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조사 결과 누군가 관을 꺼냈다가 다시 묻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알고보니 1909년 사원의 묘지 관리인들이 유품수집가인 바크흐루신(Bakhrushin)에게 매수되어

고골리의 해골을 그에게 판 것이었다.

 

 

해골리 팔리고 2년 후인 1911년,

고골리의 친척이자 해군장교인 야노프스키(Yanovsky)는 이 사실을 알게 되어

바크흐루신을 찾아가 해골을 내놓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해 유골을 되찾았다.

당시 크림반도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야노프스키는 고골리의 해골을 다시 안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침 모스크바로 가는 이탈리아군 장교에게 해골이 든 상자를 주며 모스크바 시에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모스크바로 가는 열차 안, 캄캄한 터널을 지날 즈음

장교 일행은 무료함을 달래려고 해골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한 손에 램프를 들고 다른 한 손에 해골을 든 채 승객들을 놀래킨 것이었다.

 

한참을 장난치던 그들은 승객들의 비명에 무심코 해골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해골은 사라지고 한 남자가 잘린 목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험악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 때 마침 기차가 멈춰 섰고 해골을 들고 있던 장교는 정신없이 기차에서 뛰어내려 터널 밖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도망치다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본 그는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터널 안에 서 있던 기차가 안개에 휩싸이더니 그만 눈앞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기차 안에는 승객과 승무원을 합쳐 106명이 타고 있었는데

이 중 두 명만이 기차에서 뛰어내려 무사했고 다른 승객들은 기차와 함께 사라졌다.

이후 기차는 실종 당시의 모습 그대로 러시아와 유럽 등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령열차 포예즈드-프리즈락의 전설이 탄생한 것이다.

 

그후 유령열차의 전설이 퍼지면서 이 미스터리를 밝히려는 과학자들이 나타났다.

이들 중 하나인 보리스 타라카노프(Boris Tarakanov) 박사는 조사 도중

이 기차를 현지 관광사에 빌려준 이탈리아 밀라노의 철도회사 사네티(Sanetti)사가

1841년에 멕시코 칸쿤(Cancun) 근처에 있는 한 정신병원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편지에는 유럽에서 기차로 왔다고 주장한 104명의 환자들이 일주일 동안

병원에서 치료받고 퇴원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기차와 함께 행방불명되었던 승객들의 행적이 발견된 것이다.

 

 

 

문제의 기차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을 알게 된 그는 멕시코를 방문해

환자들에 관한 자료를 찾으려고 했으나 병원이 이미 폐쇠됀 후라

당시의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유령열차의 비밀 또한 병원 자료와 함께 안개 속으로 가려지는 듯 했다.

그러나 이 기차는 계속 세계 전역에서 목격되고 있었다.

 

 

조사 결과 타라카노프 박사는 유령열차에 일련의 규칙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열차가 때로는 이틀 연속으로 같은 장소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1991년 9월 25일,

유령열차가 우크라이나 폴타바(Poltava)에 있는 철로에 나타났다는 것을 확인한

과학자들은 유령열차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 도착해 열차를 기다렸다.

 

밤을 새우며 기다리던 과학자들 앞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유령열차.

과학자 중 하나인 키예프(Kiev) 과학원의 레스차티(Leschatiy) 박사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차의 세번째 칸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잠시 후 기차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유령열차는 그 뒤에도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995년 7월 14일 밤,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는 레이더기지 책임자로 근무하던 안톤 그나튜크 준위가 유령열차를 목격했다.

이튿날 아침에 도착하는 기차를 기다리던 그는 역무원의 양해를 얻어

정차해 있던 기차의 승객칸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열차가 있는 곳으로 가던 중 다른 기차들에 비해 오래돼 보이지만

깨끗한 구식 열차를 발견한 그는 그 열차의 문을 열려고 손을 댔고

곧바로 강한 전류에 감전되어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 기차는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2001년 7월 14일

투르크메니아에서는 철로는 검사하던 역장 하무랏 베르디예프가 기차에 치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식적으로 그는 사고 당시 기관사의 부주의 로 뒤에서 오는 기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변을 당한 것으로 기록되었지만,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은 조금 달랐다.

 

목격자들은 무척 오래돼 보이는 기차가 비어 있는 철로에 갑자기 나타나 역장 쪽으로

접근했고 역작은 기차에 치이지도 않았는데 알 수 없는 힘에 밀려 뒤로 날아가

넘어져 숨겼다고 주장했다.

 

 

유령열차의 미스터리를 밝혀내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다양한 가설을 만들어냈다.

일부 학자들은 처음 기차가 사라진 지역에서 1908년에 일어났던

진도 7.5도의 강진으로 인해 강력한 전자기장이 발생해 기차가 시공을 초월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가설은 열차가 사라진 것이 지진이 일어난 3년 후라는 점과 당시

당시 다른 열차들은 무사히 그 지역을 통과했다는 것에서 신빙성이 떨어진다.

 

또 어떤 과학자들은 초과학적인 현상에 의해 기차가 시공을 초월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만

초과학적인 현상이 정확하게 어떠한 현상인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로시스카야 가제타에 실린 기사는 다시금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지금도 포예즈드-프리즈락의 존재를 믿는 주민들은

늦은 밤에는 절대로 철로 위를 걷지 않는다고 한다.

 

 

 

 

 

 

 

 

 

 

신체의 일부를 바꾸는 생체 실험

 

앨런 폴섬의 소설「모레」에는 냉동된 히틀러의 머리를 젊은 청년의 몸에 이식해

 나치의 부활을 꿈꾸는 조직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이 소설은 죽은 사람의 머리를 산 사람의 몸에 이식한다는 발상으로 화제가 되었다.

또 몇년 전에는 개에게 물려 얼굴 일부를 잃은 여성이 죽은 사람의 얼굴을 이식받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실제로 신체 일부를 다른 사람의 것으로 맞바꾸는 실험은 오래 전부터 연구되어 왔다.

1997년 7월 28일 모스크바 국립공과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 아이반 코로노브는

논문을 쓰려고 국립도서관 컴퓨터로 관련 자료들을 열람하다

자신이 조회한 전문적인 의학 단어가 얼마전 비밀이 해제된

소련 국가보안위원회의 생명공학 관련 파일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료의 이름은 '알라스토르',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복수의 신을 의미한다.

 

자료를 대충 뒤적이고 있는데 서류 뒤쪽에서 사진 1장이 떨어졌다.

원래 셰퍼드의 몸에 보다 작은 종류의 개의 머리가 하나 더 달린 모습이었는데

2개의 머리가 모두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놀란 그는 서류를 제대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속에는 사진 몇 장이 더 붙어 있었다.

모두 현실에서 보기 힘든 괴상한 사진들이었다.

머리가 2개 달린 원숭이, 개의 머리를 가진 고양이 등등.

그리고 목에 선명하게 꿰맨 자국이 남아 있는 한 노인이 의료진의 부축을 받으며 물을 마시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

 

 

자료에는 이들이 모두 사망한 뒤 다른 생명체의 몸통에 머리를 이식해 살아난 생명체라고 쓰여 있었다.

정신없이 자료를 읽어나가던 코로노브는 이 모든것이 나치의 생체실험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치의 생체실험 자료가 어떻게 소련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계속된 것일까?

 

 

 

 

1945년 1원 27일, 폴란드의 독일군 방어선을 돌파한 소련군은

아우슈비츠지방에서 대규모 수용소를 발견했다.

 항복한 독일군들을 상대로 어떤 목적의 수용소 인지를 추궁했지만

그들은 입을 꾹 다문 채 침국만 지키고 있었다.

 

수용소에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본 결과

그곳이 유태인들과 나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학살하는 장소라는 걸 알게 되었다.

소련군은 수용소를 조사하다 이상한 실험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미 실험실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폴파한 상태여서 실험도구와 재료들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금고 안에 보관되어 있던 문서들은 무사했다.

이 문서는 맹겔레의 생체실험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맹켈레는 1943년 아우슈비츠수용소에 부임한 뒤

이 곳에 갇힌 사람들에게 생체실험을 해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이 붙은 인물이다.

그는 특히 쌍둥이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쌍둥이들 중 한명의 신체를 잘라 다른 쌍둥이에게 이식하거나,

쌍둥이들의 혈액을 서로 바꿔 넣어보기도 하고,

또 쌍둥이들끼리 강제로 성교를 하게 해 쌍둥이가 태어나는가를 알아보기도 했다.

 

그는 수백쌍의 쌍둥이들을 실험에 이용했고,

실험이 끝난 후에는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모두 살해한 후 시체는 소각했다.

소련군이 아우슈비트에서 발견한 서류가 바로 멜겔레가 기록한 생체실험 자료들이었던 것이다.

이 자료들을 계속 연구한 결과 소련은 생명공학 부분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이러한 자료를 발견한 코로노브는

작은 개의 머리가 이식된 세퍼드의 사진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생명공학관련 싸이트 게시판에 올렸다.

이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이메일과 게시판을 통해 많은 질문을 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 그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고 그가 찾은 자료 역시 사라져 버렸다.

 

 

1954년 2월 3일 옛 소련 모스코바 외곽에 위치한 생물학 연구소에서는

과거에 철저한 비밀에 가려져 사람들의 접근이 일체 금지된 비밀 연구소 소장 데미코프가 독재자 스탈린이 죽자

 미국과 유럽의 기자들을 초청해 과학 기술의 우수성을 선전할 목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기이한 의술을 공개했다.

 

<블라드미르 데미코프 박사>

 

 

데미코프가 기자들 앞에 데리고 나온 동물은 작은 강아지가 어깨 위에 달려있는 매스티프 개인데

기자들은 강아지가 몸이 반으로 잘린 뒤 상반신이 매스티프의 목에 이식돼

두 마리의 개들이 한 몸통을 각기 사용하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 크게 놀라고 말았다.

 

데미코프의 조교들이 우유를 가지고 나오자

이를 각기 맛있게 먹은 개들은 머리가 두개였지만 음식을 먹으면 배가 같이 불렀는데

두 개들은 정신이 멀쩡한 것 처럼 보였고 작은 개는 다른 사람들이 만지려고 하면

사납게 으르렁대며 손을 물려는 자세를 취했다.

 

데미코프는 매스티프 개가 처음에 당황하여 목에 달려있는 강아지를 털어내려는 듯 머리를 흔들었으나

곧 적응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키메라犬을 데리고 다니는 데미코프 박사>

 

 

이들의 혁명적 의술은 2차대전 후 냉전으로 인해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미소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미국 정부는 뛰어나고 야심찬 뇌수술 전문의 로버트 화이트 박사에게

데미코프의 의술을 뛰어넘을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을 발명하도록 적극 지원했다.

 

 

그 후 화이트 박사는 클리브랜드주 오하이오에 있는 병원에

특별 연구소를 설립하고 각종 동물들을 실험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1966년 데미코프 박사의 연구소로 초청돼

그들이 어떻게 죽은 개들을 되살리고 머리가 잘린 개가 

몸 없이 단순한 기계로 계속 살 수 있으며,

그리고 몸의 상체나 머리 부분 이식에 성공할 수 있는지

생체 대체 접합술 등 이식 관련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3년간 연구에 몰두한 화이트 박사는

신장과 달리 두뇌와 심장, 폐 등 몸의 다른 부위는 거부 반응없이

이식 즉시 신체에 잘 적응되는 것을 확인했는데

그는 두마리의 원숭이를 데려다 머리를 자른 뒤 한 마리의 원숭이 머리를

다른 원숭이의 몸에 이식하는 수술을 시도해 성공했다.

 

<데미코프 박사가 만든 것으로 확인된 키메라犬>

 

 

당시 머리가 이식된 원숭이는 의식이 회복되자 화를 내며

연구원들이 입에 댄 손가락을 깨물려고 했는데

이같은 연구 결과를 일반에 공개한 화이트 박사는

데미코프나 그의 그동안 동물생체 실험과 이식수술 성공 사례를 전혀 모르는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끔찍한 머리대체 수술에 대해 거센 항의와 비난을 받았다.

 

결국 연구비가 중단되고 살해 협박까지 받은 박사는

경찰에 자신과 가족들의 신변 보호를 요청한 뒤 관

련 연구를 포기하고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계속 후진들을 양성했는데

데미코프 박사는 1998년에 타계했고

화이트 박사는 40년간 케이스 웨스턴 리서브 대학교 의대 교수로 활동하다 최근 은퇴했다.

 

 

이같은 연구는 1940년대 이래 계속되고 있는데

현재 세계의 과학자들은 첨단 유전공학 기술 및 선진 의술을 사용해

신경을 되살리는 기술을 개발하여 머리가 잘려 새 몸에 이식되는 사람의 완전한 의식을 되살리고

신체 거부 반응 없이 자유자재로 정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미확인 수중물체 USO

 

USO(unidentified submarine object)는 "미확인 수중 물체"란 뜻이다.

2000년 8월 12일 러시아 잠수함 쿠르스크호가 침몰한 흑해 노르웨이 근해는

과거에서부터 숱하게 USO가 목격된 해역이다.

이 핵잠수함은 미국 또는 영국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형 비밀 수중 물체에 부딪혀 침몰했다는 것이다.

 

 

당시 쿠르스코호 근처에 접근하는 대형 수중 물체를 육안으로 파착한 러시아 정찰기는

쿠르스크호에 무선으로 경고하였으나 소나에도 감지되지 않던 정체불명의 잠수체를 피하려던

쿠르스크호는  그만 그 괴물체와 충돌하고 말았다.

 

러시아는 아주 빠르고 핵잠수함만큼이나 거대한 그 물체가

사고 후 인근 노르웨이의 앞바다를 거쳐 영국해역 쪽으로 사라졌다고 밝혔다.

 

 

2차 세계대전부터 북유럽의 바다에서 목격되고 알려진 USO는 처음 발견당시 독일의 잠수함으로 오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독일의 패전 후 독일군의 비밀문서를 접한 미국과 소련의 연합군은 전쟁 중

독일 해군측에서도 USO를 목격하였으며,

이를 연합군의 비밀무기로 간주했던 기록을 발견하고 USO에 관한 의문을 품게 된다.

 

 

노르웨이의 정부에서 2000년 비밀공개법에 의해 공개한 문서에는

1946년부터 1970년대까지 오슬로시를 비롯한 노르웨이 근해에서 발견된 USO에 관한 다양한 목격사례들이 등장한다. 다음의 목격사례는 노르웨이의 학자 올레 자니 브래니씨가 정부에서 공개한 문서를 토대로 작성한 USO의 과거 노르웨이 출몰사례들 중의 일부와, 노르웨이의 USO 조사협회에서 작성한 조사 자료들의 일부이다.

 

 

 

 

 

1946년~1959년 노르웨이의 정부 공개자료

 

1946년 7월 18일,

노르웨이의 남동쪽 모사강에는 미확인 고스트 로켓이 하늘에서 날아와 물속으로 추락을 하였다.

당시 강에서 수영하던 사람들과 낚시를 하던 사람들은

강한 휘파람 소리와 같은 굉음을 듣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고,

하늘에 나타난 V1 로켓형체의 시가형 비행물체는 강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커다란 굉음과 물기둥을 만들고, 수심이 깊은 물속에서 빠른 속도로 움직인 뒤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를 목격하고 겁에 질린 시민들은 군인들을 불러 문제의 로켓이 떨어진 강을 조사토록 부탁하였지만,

노르웨이의 해군측은 강바닥을 조사한 뒤 수중물체는 물론 로켓의 잔해조차 없다는 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1959년 12월 23일,

노르웨이의 오슬로 근처 바다에서 작업을 하던 어부들은

하늘에 빨간색의 불빛이 나는 정체불명의 비행물체를 목격하게 된다.

 

 문제의 비행물체는 해안 쪽으로 접근하는 듯 보이더니 바다에 추락하여 사라졌는데,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비행물체가 물에 충돌하기 직전 색깔이 검은색으로 변하였다는 증언을 하였다.

 

<1967년 미국에서 촬영된 USO>

 

 

 

 

1972년~1990년 노르웨이의 USO 협회자료

 

1972년 11월 22일

노르웨이의 앞바다에서는 미해군과 영국해군을 주축으로 한 나토군이

수십척의 군함을 동원하여 훈련 중 우연히 수심을 누비는 USO를 발견했다. 

 

레이더에 잠수함과 비슷한 모습의 USO가 포착된 시각은 11월 22일 오후 4시 39분,

군함에서 잡아낸 USO의 엔진음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커다란 소리였고 항해속도도 놀라운 속도였다.

 

 

나토군의 함정들은 물체가 자신들의 배 밑으로 지나갈때 여러개의 기뢰를 발사하려 하였지만

물체는 물속에서 무려 100노트가 넘는, 당시 잠수함들이 도저히 낼 수 없는 속도를 내며 도망가 끝내 놓치고 말았다.

게다가 USO를 공격하려는 동시에 모든 군함의 전자장비가 멈춰버려서 더 이상의 추적은 불가능했다. 

실로 놀라운 속도이며, 그 당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잠수물체라고는 보기 힘든 것이다.

 

 

<1962년 프랑스에서 발견된 잠수체와 승무원 그림>

 

 

 

1990년 9월 19일, 노르웨이의 오슬로 근처 앞바다에서는

노르웨이 최강의 구축함 스타벤져가 자신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던

USO를 음파지기로 발견하고 함대 전체에 비상을 거는 사건이 발생한다.

 

스타벤져호는 세계의 해군이 사용하는 경고 메시지를 보냈으나

USO는 계속하여 스타벤져를 향해 다가왔고, 다발의 어뢰와 로켓 그리고 기뢰등을 발사하여

배를 보호하려던 노르웨이의 해군은 핵 잠수함같이 생긴 거대한 물체가 생각도 못할 속도로 움직이며,

모든 무기를 다 피하고 구축함을 가로질러 먼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2000년 노르웨이의 바다 속에서 폭발음 감지> 

 

 

오늘날에도 전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USO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정말 아직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많다지만

특히 저 넓고 넓은 미지의 바닷 속은 인간이 알고 있는 부분이 1%나 될련지 모르겠다.

혹시 저 깊은 해저의 외계인이 보낸 잠수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출처 : 괴물딴지 미스터리 사전 / 괴물딴지 웹사이트>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