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출신의 배우가 대세가 된 시기가 있습니다.
직업적 수명이 다소 짧은 모델들에게 배우는 새로운 기회가 되었고 수많은 모델들이 런웨이를 떠나 연기에 도전했습니다.
모델로서의 인지도와 런웨이 경험은 확실히 여느 신인배우들에 비해 유리한 부분이 있었는데요.
다만 진정한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오는 법.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덥석 잡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오롯이 본인의 실력이겠지요.
모델 시절 매니저를 따라나섰다가 단번에 미니시리즈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는 행운의 스타가 있습니다.
드라마 궁(2006)
모델 활동을 하면서 연기학원에 10회 정도 수강한 것이 전부이던 시절, 매니저를 따라 황인뢰 감독의 사무실에 인사차 갔다가 그 자리에서 드라마 '궁'의 주연배우로 낙점된 주인공은 배우 주지훈입니다. 드라마 '궁'을 시작으로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와 넷플릭스 '킹덤'까지 왕세자 전문 배우로 불리는 주지훈은 유복한 집안에서 사랑받고 자란 귀공자의 느낌인데요. 주지훈이 직접 밝힌 어린 시절은 다소 의외입니다.
초중등 졸업사진
주지훈은 어린 시절 부모님과 여동생,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고모 둘을 합해 총 8명의 식구가 다 함께 지냈습니다. 대식구가 방 2개짜리 12평 집에서 지낼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았지요. 겨울에는 연탄불에 물을 데워 부엌에서 목욕을 했고 화장실은 집 밖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할아버지와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했던 당시에 대해 주지훈은 "참 행복했다. 운이 좋았다"라고 말합니다.
드라마 다섯손가락(2012)
어머니가 일하는 친척 집 파밭에 가서 자신도 일당을 벌겠다며 어린 여동생을 포대기로 업고 파를 뽑고 뛰어놀아봤기에 지금 하는 일에 불평이나 투정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실제로 주지훈은 촬영 현장에 대해 "힘들었다"라는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배우로 유명합니다. 오히려 그는 "여름엔 더운 거고 겨울엔 추운 거다. 액션 영화를 찍으면 액션이 많아서 힘들고, 액션이 없는걸 찍으면 차라리 몸으로 하는 게 낫다고한다. 모든 배우가 같은 핸디캡을 가진 거다. 모두에게 있는 핸디캡은 핸디캡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맞벌이 부모님을 대신해서 여동생과 끼니를 때우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요리를 직접 했다는 주지훈은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부모님과 여동생을 챙기는 살뜰한 아들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무렵에는 주변 지인의 추천으로 모델 프로필 사진을 찍었는데, 친구들의 옷을 빌려서 찍은 사진을 보고 옆자리에 앉은 반 친구가 잡지사에 해당 사진을 보내면서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차승원, 김민준 등 남성적인 매력이 중심이던 남자 모델계는 강동원의 등장으로 미소년이 대세가 되었고 주지훈은 강동원의 뒤를 잇는 스타였습니다. 강동원이 가진 마르고 중성적인 이미지에 특유의 드라마가 있는 마스크로 큰 사랑을 받았지요.
그리고 2006년 모델계에서 나름 선배에 속했던 25살 주지훈은 연기에 막 관심을 가지고 도전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시트콤과 단막극에서 단역을 맡아 연기에 흥미를 가졌고 연기학원에도 등록한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열정만 있을 뿐 연기 실력도 경험도 부족하던 그때, 주지훈은 엄청난 기회를 만났습니다.
한뼘드라마(2005)
당시 매니저가 친분이 있는 감독님을 만나러 가는데 함께 가서 인사나 드리자고 제안한 것. "오디션이냐"라는 질문에 "그냥 가는 것"이라는 말을 믿고 따라나선 주지훈은 황인뢰 감독을 만났고 급작스럽게 "연기 한 번 해봐"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이에 주지훈은 마침 떠오른 영화 '유령' 속 정우성의 대사를 읊었습니다. 너무 긴장하는 바람에 언제 눈을 감아야 하는지 숨을 쉬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로 연기를 하다 보니 눈물을 줄줄 흘리며 대사를 했는데, 이를 본 황 감독은 감정이 너무 격해서 그런 줄 알았다지요.
그 자리에서 단번에 황 감독이 주지훈에게 제안한 역할은 드라마 '궁'의 남자 주인공 '이신' 역이었습니다. 연기가 무서워서 못한다고 3주를 도망 다녔다는 주지훈은 결국 황 감독에게 된통 혼나고 출연을 결심했는데요. 정작 촬영이 시작된 이후에는 더 많이 혼났다고 하네요.
통제없이 명동한복판에서 키스신을 촬영한 모습
실제로 드라마 '궁'은 동명의 원작만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워낙 기존 만화작품에 대한 팬층이 두터웠던 탓에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완전한 신인으로 주연을 맡은 주지훈에 대해 방영 전부터 우려가 컸지요. 때문에 주지훈은 촬영을 진행하는 8개월 동안 매일 혼나며 촬영했고 안티팬들에게 '왕자가 너무 새까맣다'라는 등의 이유로 하차 요구까지 받았습니다. 넘치는 악플과 하차 요구 때문에 미니홈피를 폐쇄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주지훈은 드라마 '궁'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연기에 안정감을 찾았고 드라마 흥행과 함께 주지훈의 인지도 역시 높아졌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왕세자 역으로 아이돌급 인기를 얻은 주지훈이 다음으로 선택한 작품이 완전히 결이 다른 드라마 '마왕'이었다는 것.
드라마 궁 흥행으로 일본 팬미팅까지 진행
데뷔작으로 스타덤에 오른 신인배우가 선택하기에는 무척 리스크가 큰 방식이었는데요. 당시에 대해 주지훈은 "본능적으로 반대되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면서 "인지도나 금전적인 것들로 이야기하면 손해 본 지점이 있지만 긴 배우 인생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드라마 마왕(2007)
실제로 '궁'을 통해 전국 여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주지훈이 연이어 '백마 탄 왕자님'의 역할을 맡았다면 촬영장에서 스타급 대우를 받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주지훈은 보다 어려운 길을 택했고 드라마 '마왕'의 대본 리딩 때부터 대선배들 사이에 혼나며 연기하는 일상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주지훈은 스태프와 대중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급성장한 연기력을 선보였습니다.
뮤지컬 돈주앙(2009)
이후에도 주지훈은 2009년 뮤지컬 '돈주앙'을 통해 무대연기에 도전했는데, 당시 스태프 모두가 주지훈의 첫 공연을 직접 관람하고 응원할 정도로 성실하게 임했습니다. 당시에 대해 주지훈은 "'궁' 이후 기뻐할 수 있는데 계속 채찍질만 했다"라며 치열하게 연기 공부를 해온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최근 주지훈은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해 "20대 때는 내가 남자 같고 어른 같았다. 부끄럽다"면서 "20대 때는 군 제대하고 나서 눈 감았다 뜨니 지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2011년 11월 30살에 제대한 주지훈은 2012년부터 현재까지 영화 10편, 드라마 7편에 출연하며 열일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영화 좋은친구들(2014)
영화 아수라(2016)
지나칠 정도로 치열하게 해온 이유 중 하나는 청춘물인 '궁'으로 얻은 이미지를 빨리 벗어나 연기 폭을 넓히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기도 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2014년 개봉한 영화 '좋은 친구들'은 흥행 면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배우로서 주지훈에게 연기의 폭을 넓혀준 전환점이 된 작품입니다.
영화 신과함께(2017)
영화 암수살인(2018)
이후 영화 '신과함께'의 두 개 시리즈는 주지훈에게 쌍천만 배우의 수식어를 붙여주었고 영화 '암수살인'은 데뷔 후 첫 남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이지요.
킹덤(2019)
그리고 넷플릭스 '킹덤'은 세계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주지훈을 월드클래스 배우로 만들었는데요.
드라마 하이에나(2020)
지금도 영화 '사일런스'와 드라마 '지리산'을 동시에 촬영 중이라는 주지훈은 "좋은 작품을 주니 안 할 이유가 없다"면서 오히려 "궁2을 찍었다고 해서 '아수라'를 할 수 없었을까. 나이를 먹고 하고 싶은 장르를 해보고 나니 청춘물을 충분히 즐기며 했어도 됐을 텐데 아쉬움이 든다"라고 남다른 욕심을 드러냈습니다.
지금 당장 '궁'의 새로운 시리즈에서 주연을 맡는다고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어 보이는 배우 주지훈. 멜로부터 액션 누아르까지 다되는 주 배우의 행보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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