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선 13년동안 가스라이팅 당하며 1000억원이상 뜯겼다.. 그 후 바뀌어 버린 그녀의 삶에 오은영박사도 충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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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선 13년동안 가스라이팅

그 후 바뀌어버린 그녀의 삶

김완선의 아버지

김완선 아버지는 딸들에게 무뚝뚝한 아버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집안 분위기 때문인지 어렸을 때부터 김완선은 늘 조용하며 내성적인 성격이었습니다 그치만 춤을 출 때만큼은 신났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김완선 이모

그녀의 춤 솜씨를 미리 알아본 이모 한백희는 방학 때 김완선을 자기 집으로 아예 데려다 놓고 연습을 시키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김완선의 어머니가 개학 전날에 데릴러 이모 집에 가면 김완선은 집에 가지 않겠다고 신랑이를 버렸다고 했습니다

김완선 중학교

그녀가 중학교 2학년때부터 이모의 통제하에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녀는 당시 이모 한백희를 통해 기존에 없던 특이한 그룹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수소문을 해 끼도 없고 노래도 불러본 적 없었다는 인순이를 직접 찾아가 가수를 해보지 않겠냐며 제안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인순이를 가수로 발굴해 낸 사람이 김완선의 이모 한백희였습니다

한백희는 몸매를 강조하는 파격적인 의상에 화려한 안무로 희자매를 무장시켰습니다 희자매는 대한민국 가요계를 떠들썩 하게 만들었습니다

한백희는 인순이를 솔로로 데뷔시키며 올인했습니다 인순이와 이름 터치로 활동하게 하는데 그때 한백희가 발굴한 리듬터치의 백댄서들로 훗날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박철우 그리고 중학생 김완선이 있었습니다




인순이 고백

인순이는 훗날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한백희와 헤어진 배경을 설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인순이에게 너는 지는 해이고 완선이는 뜨는 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인순이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백희는 인순이에서 김완선으로 표적을 바꾸고 김완선에게 올인하게 되었습니다 김완선은 3년동안 연습실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발성과 노래 춤 악기, 일본어까지 그야말로 스타가 되기 위한 빡센 트레이닝을 받았습니다 당시 이수만이 한백희의 연습실에 여러번 찾아와 김완선이 트레이닝을 받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김완선을 보면서 보아를 키워냈고 지금의 sm 회사를 성장시키게 되었습니다

1986년 18살나이에 김완선은 데뷔를 했고 데뷔곡은 오늘밤으로 김완선 한국의 마돈나 섹시디바의 아이콘이 되며 화려한 스타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김완선은 앨범의 성공으로 자신이 댄스가수가 아닌 사실을 입증해 보였습니다 3집 앨범 역시 가요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탄탄히 다져나갔습니다

김완선의 승승장구

김완선이 승승장구 하면서 이모 한백희의 통제가 심해져 갔었습니다 희자매 해체의 아픔을 또다시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았던 한백희는 김완선을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감시했었습니다 분장실에서도 다른 동료들과 사적인 대화를 하지 못하도록 통제했습니다 심지어 부모님 집에 가는 것을 막는 것은 물론 김완선의 어머니가 집에 온다고 하면 일부러 없던 스케줄까지 만들어 못만나게 분리시켰습니다

김완선에게 단 한번도 수입을 제대로 정산한 적이 없는 한백희는 그런 사실이 찔려서 김완선을 더 철저히 세상과 고립시켜가며 자신의 통제하에 두면서 김완선을 길들였습니다




국내 복귀

20대 후반에 김완선에게 많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10년 넘게 활동을 했어도 수입을 정산해 주지 않은 이모의 실체를 그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15살 때부터 이모의 통제하에 억눌러 살았으며 자유도 없었습니다 그런 김완선이 자기 스스로 이모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망치듯 그렇게 부모님 집으로 향했습니다

김완선 이모 한백희 죽음

2006년 한백희는 7년간 당뇨 합병증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백희는 집에 모아둔 돈은 커녕 빚만 10억이 넘게 있는 상태였습니다 병원비조차 빌릴 곳이 없어 한백희는 김완선에게 연락을 했다고 했습니다 김완선의 전성기 시절 한 달 수입이 집 세 채를 살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수입을 벌어들였다고 했습니다 환산해 보면 대략 1000억원 정도 였습니다

한백희는 남편에게 다 갖다주었습니다 그 많은 돈을 한백희 남편이 탕진했었습니다 김완선은 자신에게 큰 상처를 줬던 이모를 못 본 척할 수 없어서 마지막 생활비와 병원비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연예계의 굵직한 신화를 남기고 1949년 58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완선 무기력

어렸을 때 부터 이모의 통제하에 생활해서 그랬는지 그녀는 늘 무기력하며 피곤한 상태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오은영박사가 중학교 때 이미 가수가 되기로 결심하고 이모를 따라 나선 것을 보면 원래 성격은 자기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이였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오랜 기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컨트롤을 당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이렇게 무기력하고 피곤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오은영 박사는 김완선에게 우울증까지는 아니지만 기분이 가라앉은 상태로 너무 오랜 기간을 지내다 보니 이제는 만성화가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완선에게 적극적인 치료를 조언했습니다 자신의 상태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고 지적했습니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위로 받고 보상 받으며 삶의 즐거움을 되찾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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