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약간 쌀쌀하지만 한낮에는 산책이 절실할 정도로 맑은 날씨가 되죠. 동시에 ‘연애하고 싶다’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도 하는 계절입니다. 하지만 계절에 취해 섣불리 연애를 시작했다가는 안 하느니만 못한 연애를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봄을 맞이해서 현실적인 연애를 그린 영화들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라면 먹고 갈래?’의 시작
<봄날은 간다>
달콤 쌉쌀한 연애를 다룬 영화를 논할 때 <봄날은 간다>를 빼놓을 수 없죠. 멜로 거장 허진호 감독과 젊은 시절의 유지태, 이영애 최고의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유지태는 사운드 엔지니어인 상우를 맡았고, 이영애는 상우와 함께 녹음 여행을 떠나는 라디오 PD 은수로 분했습니다.
아직까지도 예능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패러디 되는 ‘라면 먹고 갈래?’는 바로 극중 은수가 상우에게 던진 말입니다. 사실 이영애가 한 말은 ‘라면 먹을래요?’였죠. 메인 주제곡인 ‘봄날은 간다’도 영화의 분위기를 한 층 더 아련하게 만드는 최적의 곡이었습니다.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의 애절한 목소리가 관객들의 여운을 더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죠.
두 사람은 춥고 외로운 겨울에 만나 포근하고 따뜻한 봄에 깊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봄이 떠나자 이별을 맞이했죠. 이 영화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이별을 고하는 은수에게 억울하다는 듯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는 상우의 질문에 ‘헤어져’라고 단호하게 대답하는 은수의 이별신입니다. 마치 자연스럽게 꽃 피웠다가 지는 계절의 변화처럼, 사랑 또한 그렇게 저물어 간다는 것을 잘 표현한 장면입니다.
세상에 ‘좋은’ 이별이 어디 있니
<500일의 썸머>
<봄날은 간다>가 조금 낭만적인 남녀의 이별을 그렸다면, <500일의 썸머>는 낭만은커녕 영화를 보던 중 ‘내 얘긴가?’할 정도로 리얼리티를 추구한 영화입니다. 연애 중인 연인이 서로 사랑함에도 왜 끊임없이 싸우고, 사소하기 그지없는 갈등이 발생하는 지를 위트있게 풀어낸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죠.
찌질하고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톰’은 우연히 ‘썸머’와 만나 썸 아닌 썸을 타게 됩니다. 톰은 썸머가 운명의 상대임을 믿어 의심치 않죠. 하지만 모든 연애가 그렇듯 두 사람은 조금씩 삐꺽거리기 시작합니다. 톰은 썸머가 변덕스럽고 더 깊은 관계를 거부한다고 여겼지만, 사실 썸머의 취향을 무시하고 더 깊은 관계를 일방적으로 요구했던 것은 톰이었죠.
<500일의 썸머>에서 연애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이별 후 톰이 썸머를 회상하던 장면입니다. 연애 중에는 썸머 치열, 패션, 심지어 몸에 있는 점까지 하트 모양이라 사랑스럽다던 톰은 헤어지자마자 치열은 삐뚤삐뚤하고, 패션은 60년대 스타일이고, 점은 바퀴벌레 모양이라고 썸머를 ‘디스’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찌질함을 보여줍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죠.
하지만 영화의 백미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마지막 장면인데요. 썸머를 완전히 잊은 톰은 면접을 보러갔다가 한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잠시 고민하던 톰은 용기를 내 데이트를 신청합니다. 그 여자의 이름은 ‘어텀’이었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 것입니다. 영원한 이별도, 영원한 연애도 없다는 영화의 메시지를 잘 표현한 장면이죠.
쿨하지 못해 미안해
<러브픽션>
모든 남녀가 연애에 있어서 쿨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러브픽션>은 평생 연애 한 번 못해본 3류 작가 구주월과 완벽한 커리어 우먼 희진의 연애를 코믹하게 그렸습니다. 구주월은 희진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언변과 글솜씨를 발휘하죠. 제 3자의 입장에서는 우스꽝스러워 보이고 찌질해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구주월은 금새 사랑이 식은 모습을 보입니다. 식성도, 성격도 달랐지만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틀어지죠. 말 그대로 ‘쿨하지 못한’ 남자의 일면을 제대로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러브픽션>의 최고 명장면은 구주월이 희진의 겨드랑이 털을 모티브로 만든 노래 <알래스카>의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장면 아닐까요? 구주월의 사랑스러움과 영화 특유의 위트가 잘 느껴지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그놈의 술이 문제야
<가장 보통의 연애>
<가장 보통의 연애>는 시작부터 술냄새가 진동하는 영화입니다. 결혼 직전 약혼자에게 파혼을 당한 ‘재훈’은 하루하루 술로 마음을 달래고 있죠. 그러다 우연히 직장 동료 ‘선영’과 술을 마시며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안정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재훈과 그런 깊은 감정을 믿지 않는 선영 사이에 여러 헤프닝이 생기는 이야기죠. 이 영화는 30대 남녀의 현실적인 로맨스 뿐만 아니라 사회 생활을 하며 겪는 고충들까지 담아 호평을 받은 작품이기도 한데요. 직장 내 뒷담화, 안전이별 문제까지 폭 넓게 다룬 영화입니다.
특히 선영의 ‘사이다’가 큰 관람 포인트인데요. 나이를 들먹이며 남자랑 여자랑 같냐는 재훈의 말에 ‘같지! 다르다고 배웠니, 너는?’라는 대사가 대표적이죠. 또한 직장 동료에게 복수하는 자리에서 상사가 ‘이러면 선영씨도 똑같은 사람 되는거야’라고 하자, 선영은 ‘당하고만 살면서 정신승리를 하느니, 그냥 저도 똑같은 인간이 되보는 것도 괜찮은거 같아서요.’라고 당차게 대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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