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톱텐 1위 하던 가수가 다 버리고 미국 잡지사 어시스턴트가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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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의 사업 진출은 익숙한 소식이면서도 여전히 불편함이 느껴지는 뉴스인데요. 사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연예인으로서의 인지도를 활용해 돈을 벌고자 하는 하는 안일함이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지요.

반면 연예인으로서의 인지도는 버리고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연예인 출신 사업가도 있습니다. 가수와 배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큰 인기를 누리던 스타가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해외에서 초짜 사업가가 된 이유는 무엇인지 만나봅시다.

데뷔하자마자 성공한 연예계 생활
일의 노예 같았다

90년대 중후반 가요계는 물론 연기까지 도전해 큰 사랑을 받은 스타는 바로 임상아입니다. 90년대 가요계를 흔든 히트곡 '뮤지컬'을 부른 가수로 기억되는 임상아는 사실 앞서 1995년 SBS 특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했는데요.

1995년 SBS '야망의 불꽃'을 시작으로 '남자 대탐험', '형제의 강', '여자', '복수혈전', '마음이 고와야지' 등 다수 드라마에 출연해 연기자로서 활발히 활동했고 1996년 주영훈이 작곡한 뮤지컬을 부르며 가요계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다만 데뷔 직후부터 집중된 언론과 대중들의 관심, 그리고 밀려드는 연예계 일은 임상아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었는데요.

결국 연예계 생활을 견디지 못한 임상아는 1998년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뉴욕으로 떠났습니다. 이후 임상아는 인터뷰를 통해 "일의 노예가 된 느낌이었다. 이미지 때문에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다"라며 은퇴의 계기를 털어놓기도 했지요.

사실 임상아가 처음 뉴욕으로 간 이유는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뉴욕대학교에서 필름 프로덕션 과정을 밟다가  요리학원을 다니기도 하며 자신의 꿈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잡지사 어시스턴트부터 시작
할리우드 잇백 만들기까지

꿈을 찾아 다양한 시도를 하던 임상아는 결국 2001년 미국 유명 디자인 학교인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입학해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고, 졸업 후에는 유명 잡지사인  VOGUE의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를 하며 밑바닥부터 실무를 익혔습니다. VOGUE 패션 스타일팀의 스타일리스트로서 경력을 쌓은 후  2006년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건 가방 브랜드 SANG A BAG을 론칭했지요.

이후 에르메스 가죽 공방에서 발견한 악어 꼬리 원단 샘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었다는 상아백은 상위 1%를 위한 최고급 악어백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요. 브룩 실즈, 비욘세, 앤 해서웨이, 리한나 등 할리우드 스타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송혜교, 신은경, 삼성 이서현까지 상아백  마니아로 알려지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임상아는 전 세계 20여 개 국가에 매장을 오픈하고 2008년 보그에서 주목해야 할 신예 디자이너로 선정, 2010년에는 '12명의  아메리칸 디자이너'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패션 디자인 펀드상을 수상하기도 했지요.

일반적으로 연예인으로서의 지명도를 이용해 브랜드를 론칭하고 해외 팬들에게까지 어필하는 방식을 벗어나 오히려 실력으로 승부해 해외에서 인정받은 후 국내로 역진출한 것입니다.

카리스마 뉴요커 보스
한국 스타일 고수하는 이유

임상아의 사업영역은 가방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2007년에는 상아 주얼리를 론칭했고 2012년부터는 마케팅과 컨설팅 사업으로 확장해  현재는 패션, 엔터테인먼트 IT를 접목시킨 전략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임상아는 tvN '문제적 보스'에 출연해 14년 차 베테랑 보스로의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공개된 영상 속 임상아는 뉴요커답게 커피와 베이글을 들고 출근해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직원들의 업무를 체크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보스였습니다.

실제로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아이디어와 결과물을 요구하는 임상아의 모습은 프로그램 패널들 사이에 찬반 의견이 나뉘기도 했는데요. 임상아는 직원들의  데드라인을 강조했습니다.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평생 만들 거면 누가 못하냐."라며 "디자이너라면 데드라인에 맞춰서 끝낼 수 있어야 한다. 그  훈련이 진짜 중요하다."라고 재차 언급하기도 했지요.

더불어 "사실 가장 어려워해야 하는 건 제일 아래 직원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13년째 함께 일하고 있는 조셉보다 그들을 더 어려워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다만 직원들에게 다소 엄격해 보이고 뉴욕식 정서를 활용한다는 임상아도 여전히 한국인이었습니다.

임상아는 직원과 함께 외근을 나가 식사를 한 후 직원의 식비까지 본인이 지불했는데요. 이에 대해 해당 직원은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은 직원에게 식비를 지급하지 않고 직급에 상관없이 더치페이를 한다며 '한국식'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에 대해 임상아 역시 "사실 한국적인 방식이다. 뉴욕에서 비즈니스를 배우며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한국식이 좋은 건 그대로 둔 것  같다."라고 밝혔습니다. 더불어 임상아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나라의 직원들과 일을 해봤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부지런하고 아이디어 넘치는 민족은  없더라."라며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지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용돈을 모아 반포 지하상가에서 옷을 사 입을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는 임상아가 할리우드 스타들이 사랑하는 브랜드를 론칭하기까지 연예인으로서의 이름은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은 듯한데요. 오히려 스타로서의 영광을 버리고 성공한 한국 여성 디자이너로서 한국 패션계를 해외에 알리는 남다른 국위선양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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